그저께는 성탄절이었다. 믿든 안 믿든 한 해 끝을 어떤 종교적 거룩함 속에서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지난 한 해 자신의 자취와 주변을 고요와 애정의 눈으로 마주하게 하는 이 공기는 감사하다.
지난 한 해 교황 프란치스코는 낮고 힘든 자들 옆에 늘 함께하며 지구촌을 숙연케 한 ‘거리의 교황’이었다. 교황청 앞 노숙인 세 명이 그가 생일 아침 초대한 손님이었다. 얼굴을 덮은 수백개 종양 때문에 차별 속에 고통받아온 남자의 얼굴엔 입맞춤으로 천국의 경험을 선사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런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는 첫 성탄절 메시지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듯, 나 또한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 말한다”고 했다. 타임 표지에서 연민 가득한 눈을 한 그가 다짐하는 두려움은 무엇이었을까.
![[마감 후]거리의 교황, 궁궐 속 대통령](https://img.khan.co.kr/news/2013/12/26/l_2013122701004281000328691.jpg)
지난 1년 무수한 말들이 곳곳에서 울림들을 만들었지만, 교황 프란치스코의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만큼 천둥으로 들린 것은 없을 것이다. 직접 사도의 의무를 밝힌 ‘사도의 권고’라는 문서에서였다. 자본주의 심장에 ‘월가를 점령하라’는 분노만이 가득한 이 시대의 불안을 그처럼 힘 있게 압축한 것은 없다. 그는 “나는 사방이 꽉 막혀 자신들 보안에만 매달리는 병든 교회보다는 길에 있는 더럽고 상처입고 부서진 그런 교회를 좋아한다”고도 적었다. 천생 ‘거리의 교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찰이 많은 상흔만 남긴 채 철도노조 지도부 강제 검거에 실패한 이튿날인 23일 아침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사회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기간제 기관사 등 500여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파업 지도부 검거 실패에 ‘대량 해고’ 협박이란 독기로 응수한 것이다. ‘원칙’은 마치 ‘불관용’의 동의어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해 보았는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가족들 삶과 미래는 또 생각해 보았는가. ‘국민행복’을 말하던 박 대통령이 구중궁궐 속에서 발신하는 ‘원칙’엔 거리의 교황처럼 삶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보이지 않는다. 공자님 말씀을 빌리자면 ‘인정 없는 원칙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모든 문제를 국민 중심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쯤이면 내 좁은 머리론 해독이 불가하다. 대통령의 국민은 과연 누구일까.
그 비밀은 이정현 홍보수석의 ‘불통론’에서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불통 논란’에 “억울하다”고 항변한 뒤 “국민이 박수치는 게 소통”이라고 말했다. 또 “원칙대로 길을 가려고 하는데 ‘불통’이라 욕한다면 그건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도 했다. ‘국민’은 삶과는 무관한 어떤 추상적 집합체가 아닌가 하는 코끼리 더듬기식 짐작만 간다. 김덕룡 민화협 상임공동대표는 이 ‘불통론’에 “지금 청와대는 화성으로 이사갔는지, (민심의) 통화권 밖에 있다”고 했다.
거리의 교황과 궁궐 속 대통령. 청와대의 소통은 통치자의 눈으로 본 군림하는 소통이다. 혹여 박수치지 않는 이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저 ‘저항세력’으로 선을 그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종교에서 ‘거리의 교황’과 같은 사회적 전통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타임’은 1999년 ‘20세기를 이끈 지도자·혁명가 20인’을 꼽으면서 레닌과 나란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선정했다. “신자유주의는 이윤과 시장을 유일 기준으로 아는 경제적 인간 개념에 기반한 시스템”이라거나, “미국은 남의 나라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데는 빠르면서도 정작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는 너무 느리다”는 그의 질타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독재’ 발언만큼이나 매섭다. 요즘 우리로 치면 반미주의자에 반시장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는 소설 <달의 궁전>에서 “대화는 누군가와 함께 공던지기 놀이를 하는 것이나 같다”고 말한다. 공던지기는 바로 상대를 ‘1대1’로 마주보며 가슴을 향해 적당한 높이로 던질 때만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내 맘껏 날려 놓고 ‘잘 받으라’는 공던지기는 오래갈 수 없다.
대화와 소통은 늘 서툴고 어렵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랑하신다는 국민 하나하나 가슴을 향해 ‘말을 던진다’면 대화는 이어져 갈 것이다. 새해엔 궁궐 속에서 박수를 기다리지 않는 대통령의 말이 종소리처럼 거리를 내달려 가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