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548쪽 | 2만5000원
“서책을 인출할 때 감인관, 감교관, 창준, 수장, 균자장은 한 권에 한 글자의 오자가 나오면 태 30대를 치고, 오자가 한 글자씩 늘어날 때마다 1등을 더한다.”
조선 중종 때 만들어진 법령 가운데 하나로 책 교정, 인쇄를 담당한 관리에게 적용했다. 실제로 오자가 발생해 태형을 가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조선이 책을 어떻게 대했는지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책과 삶]책에 오자가 있으면 곤장을 맞았다는 조선시대 출판문화 이야기](https://img.khan.co.kr/news/2014/01/03/l_2014010401000311300037721.jpg)
조선시대 출판의 모든 것은 국가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됐다. 금속활자는 국가 소유였다. 책을 만드는 장인, 노예는 모두 국가기관에 예속됐다. 이 때문에 인쇄부터 유통까지 민간이 끼어들 여지는 극히 드물었다.
조선은 통치에 필요한 만큼만 책을 찍어냈다. 그래서 책이 늘 부족했다. 책은 일부 양반계층에서만 전유됐고 책값은 비쌌다. 조선 전기 <대학> <중용> 한 권 가격이 논 2~3마지기 소출에 해당했다. 또 18세기 중엽 성리학 필독서 <주자대전> 한 권은 오승목 1동과 맞바꿀 수 있었다고 한다. 오승목 1동은 당시 양민 25명이 1년 동안 부담해야 할 군포의 양에 맞먹었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조선의 출판문화를 다룬다. 책의 제작·유포 과정을 세밀히 들여다보며 조선시대 지식 소비의 풍경을 그려낸다. 한때 <삼강행실도>가 왜 무수히 간행됐는지, 왜 학자들은 서간문 형식을 많이 남겼는지, 일본에 수출한 책의 주종이 <대장경>인 까닭은 무엇인지 등 과거 출판 역사를 통해 정치와 문화를 읽어낸다.
조선의 출판문화는 틔우지 못한 꽃망울이다. 서점의 경우를 보자. 조선 조정은 서점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수차례 설치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서점은 설치되지 않았다. 서점이 생겨도 책이 원활하게 유통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기 때문이다. 사대부들은 책을 거래 가능한 물건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또 서점을 유지할 만큼 책의 양도 많지 않았다. 책쾌 같은 민간 차원의 서적 유통업이 존재하긴 했지만 영향은 미미했다. 저자는 국가독점체제가 출판문화의 숨통을 조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임진왜란이 겹치면서 출판문화가 붕괴됐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역설적이게도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습득한 조선의 책과 활자를 바탕으로 출판문화를 꽃피웠다. 18세기 초 일본의 서점은 전국적으로 300곳이 넘었고, 청나라에서는 대규모 서점 상가 ‘유리창’이 번성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 유독 조선만 서점이 없었다. 서점의 부재는 결국 지식 시장의 부재를 의미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금속활자의 나라라는 자부심이 무슨 소용 있는가”라고 되묻는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민간에 급속도로 확산됐는데 세계의 자랑 금속활자는 국가의 손아귀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은 저자가 보기에 개탄스러운 일이다.
세종 이후 한글로 쓰인 책은 한문의 번역물뿐이다. 천대받은 한글은 문자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출판문화를 견인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한국어로 사유한 책을 찾아보기 힘든데 저자는 이것도 비극이라 말한다.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을 잘 버무리는 저자 특유의 솜씨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에도 배어 있다. 주제의식 면에서 그의 전작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의 확장판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