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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노동자에게 진 빚

입력 2014.01.14 20:48

수정 2014.01.1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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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명교 |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새해 벽두부터 아시아 전역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20㎞ 떨어진 공단지역에선 무장한 군대가 2주째 파업 중인 의류노동자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전체 60만여명에 달하는 캄보디아 의류노동자 중 30만명이 이 파업에 참가해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최저임금을 두배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왔다. 캄보디아 정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최소 5명의 노동자들이 죽었고, 수백여명이 다쳤다.

[2030콘서트]캄보디아 노동자에게 진 빚

한데 며칠 뒤 경악스러울 만한 사실이 국내에 알려졌다. 약진통상 등 한국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캄보디아의류생산자협회가 이 의류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면서 임금이 인상될 경우 공장을 이전하겠다는 협박을 해왔으며, 그것이 이번 무력진압의 큰 원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미 언론 ‘글로벌포스트’는 “캄보디아 군대의 시위 진압에 한국이 배후조종했다”는 제목으로 캄보디아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무력진압에 나선 이유를 심층보도하기도 했다.

캄보디아의류생산자협회는 캄보디아노동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려는 등 국내에서 하던 온갖 나쁜 버릇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국내 언론들은 5명의 노동자가 죽었는데도 손실이 얼마니 하는 말만 떠들어댔다. 방글라데시에서도 학살이 벌어졌다. 한국 수출가공공단 노동자들이 사장들의 임금삭감 조치에 항의하며 벌인 시위에 경찰이 발포해 스무살의 여성노동자가 사망하고 많은 노동자들이 다친 것이다. 업체 중에선 ‘노스페이스’ 브랜드로 잘 알려진 영원무역도 있다.

베트남에서도 건설플랜트 노동자 40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베트남 북부의 삼성전자 제2공장 신축현장에서 삼성 용역 경비가 작업시간에 지각한 노동자에게 폭력을 가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분노한 것이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의 찾아서 아시아 곳곳으로 ‘진출’했다. 또 많은 국내 자본가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임금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하면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나가버릴 것이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그 때문에 법정최저임금으로 장시간 일하는 많은 한국 노동자들이 생계를 보전하기 어려운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침묵하며 일해야 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 체계가 아무 대안 없이 지속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베트남에서 일고 있는 아시아 노동자들의 저항은 국내 노동자들과 동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바로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며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주말 보신각 앞에선 2000여명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 자본가들과 캄보디아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있었다. 국내 이주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모였다. 이들은 고향의 동료 노동자들이 한국 자본의 탐욕과 캄보디아 정부의 무력진압으로 죽어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어 버스를 전세 내거나 기차를 타고 서울로 모인 것이다.

자본시장의 변화는 더 이상 우리가 ‘시민’으로조차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가는 캄보디아인들은 모국에서나 머나먼 이국땅에서나 온전히 ‘시민’으로 살기 어렵다. 그것은 국내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내몰려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는 캄보디아와 베트남,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게 크나큰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단결해 기업도, 정부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 싸우고 있다. 스스로 ‘시민’이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거리로, 도심으로 나서고 있다. 그것은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먼 땅에 사는 불우한 이들의 문제로 보는 시혜적인 시선을 넘어 그 뜨거운 요청에 화답해야 하지 않을까? 폭력으로 얼룩진 새해 벽두, 평범한 사람들의 ‘글로벌’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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