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 노동’ 한계에 부딪힌 동남아

“노동자도 힘들지만 우리도 도산할 판”

프놈펜 | 정유진 기자

정유진 기자 프놈펜 3신 - 캄보디아 한국 공장들, 모두가 ‘을’

“지난달 직원들 월급을 주려고 사채까지 썼다. 물가가 올라 노동자들 삶이 좀 어려워진 것은 알지만 도산을 할 수는 없지 않으냐.”

글로벌 의류제조 산업은 무한경쟁의 세계다. 생산원가가 아니라 누가 더 싸게 납품가를 제시하느냐로 명운이 갈린다. 월마트, 갭, H&M, 필라 등 유명 브랜드들은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하는 하청 업체를 찍어 오더(주문)를 내리면 그만이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카나디아산업단지에 있는 한국계 기업 가원어패럴 공장에서 16일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br />가원어패럴의 차경희 대표는 “노동자들의 어려운 형편은 알지만 수주경쟁 때문에 더 이상 임금을 올려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프놈펜 |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캄보디아 프놈펜의 카나디아산업단지에 있는 한국계 기업 가원어패럴 공장에서 16일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가원어패럴의 차경희 대표는 “노동자들의 어려운 형편은 알지만 수주경쟁 때문에 더 이상 임금을 올려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프놈펜 |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 하청업체 공장주들 월급 주려고 고리사채
“물가 폭등부터 잡아야” 사장들은 정부에 불만

캄보디아 프놈펜 의류산업단지 시위 유혈진압 뒤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에 다시 세계의 관심이 쏠렸지만, 공장주들에게도 사정은 있다. 그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저항하는 이유는 그들 역시 유명 브랜드들 앞에선 ‘을’이기 때문이다. 프놈펜에서 14년째 의류회사 가원어패럴을 운영하고 있는 차경희 대표는 지난달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월 이자가 30%가 넘는 사채를 빌렸다. 파업 기간 조업을 멈췄던데다, 최근 1년 새 최저임금이 66달러에서 80달러로 오르는 바람에 수익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16일 “봉제공장의 경우 매출에서 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50%일 때 가장 이상적인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되면 15~20%의 이윤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최저임금이 오른 뒤 급여비중이 매출의 70%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반대로 납품가는 떨어졌다. 신규 공장들이 워낙 늘어난 탓이다. 지난해 공장 붕괴사고로 방글라데시 노동환경이 도마에 오른 뒤 기업 이미지를 우려한 브랜드들이 캄보디아에서 수주를 늘린 것이 캄보디아 진출을 가속화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일부 업체가 제살깎아먹기 식으로 가격을 후려쳐 오히려 납품가는 내려갔다.

차 대표는 지난해 5군데의 업체가 도산했고, 최근 파업 이후 또 한 곳이 폐업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노동자 시위가 격화되자 최저임금 100달러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노동자들은 160달러를 원하고 있다. 차 대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정부 요구처럼 100달러로 올리는 것조차 무리”라고 했다. 프놈펜 외곽 칸달산업지구에서는 16일에도 2개 공장의 노동자들이 밀린 급여를 달라며 시위를 벌였다고 캄보디아데일리가 보도했다. 차 대표는 노동자에 앞서 정부를 비판했다. “물가부터 잡아야지, 매년 급여를 올리면 사업을 하지 말란 이야기”라는 것이다. 임금인상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집세를 올리는 건물주들도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값싼 노동력을 발판 삼아 성장의 밑돌을 놓은 뒤 중공업-첨단기술산업으로 이행한 ‘아시아 호랑이들’의 성공모델은 이제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미 동남아 국가들의 저임금 성장전략은 한계에 와 있다. 정정불안과 부패, 취약한 교육·기술 인프라로 인해 글로벌 경제의 분업구조 속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것이다. 방글라데시, 캄보디아의 시위와 유혈사태는 모두 그 막다른 골목의 단면들이다.

차 대표는 최근 유혈사태 뒤 한국 기업이 논란에 휩싸이자 가원어패럴에 12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던 서구 기업이 투자를 철회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아무 손해도 없이 수주 지역만 바꿔가며 이미지 관리를 하는 셈이다. 그는 “결국 모든 리스크를 하청업체들이 흡수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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