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인류학을 학문으로 만든 네 명의 저자, 그들의 특별한 글쓰기 전략

서영찬 기자

▲ 저자로서의 인류학자…클리퍼드 기어츠 지음·김병화 옮김 | 문학동네 | 226쪽 | 1만8000원

인류학 텍스트는 그 성격을 규정하기가 참 까다롭다. 물리학이나 수학 텍스트처럼 과학적이지도 않고 소설처럼 문학 텍스트로 분류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사회학의 틀 안에서 논하기도 한계가 있다.

[책과 삶]인류학을 학문으로 만든 네 명의 저자, 그들의 특별한 글쓰기 전략

인류학자인 저자 기어츠는 인류학 텍스트가 이도저도 아니라며 이를 노새에 비유한다. 하지만 이 같은 한계를 딛고 불모지를 개척하듯 인류학을 고유한 담론으로 끌어올린 학자들이 존재한다. 레비스트로스, 말리노프스키, 에번스프리처드, 베네딕트. 저자는 인류학에서 단순 ‘작가’의 수준을 넘어 ‘저자’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이들 4명을 꼽는다.

작가, 저자의 구분은 롤랑 바르트의 개념을 빌려왔다. 저자란 개성적 글쓰기를 통해 고유한 사상 세계를 구축한 사람으로 텍스트 자체를 초월한 경우다. 마르크스, 프로이트는 경제학과 정신분석학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사상 세계를 구축해 저자로 우뚝 선 대표적 인물이다. 기어츠는 네 인류학자가 어떤 방식으로 글을 썼는지 분석하며 이를 통해 이룬 인류학적 성취를 탐구한다.

베네딕트는 40대에 인류학에 입문해 단기간에 대중적 인기를 획득했다. 현지 조사를 거의 하지 않고 이론화 작업에 관심도 없는 베네딕트가 스타 학자가 된 배경은 무엇일까. 저자는 베네딕트의 성공 요인으로 그의 독특한 글쓰기 전략을 주목한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와 상상 속의 그들’을 대비시키는 작법을 구사했다. 타자를 통해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가령 <국화와 칼>에서 그는 일본문화가 위계적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질서와 계급제도에 대한 그들의 의존과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천양지차”라고 쓰는 등 시종 미국인과 일본인을 대비시키는 전략을 채택했다. ‘일본에서는’이라는 표현 못지않게 ‘미국에서는’이라는 표현이 빈번하게 나온다. 자신감에 차 요점만 파고드는 베네딕트의 논법은 이 같은 문화 대비법을 더욱 호소력있게 만들었다.

영국 명문가 출신 에번스프리처드는 청년 시절 군인으로 아프리카 수단에 배치돼 이탈리아 군대와 격전을 치렀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짤막한 논문 ‘아코보 강 및 길라 강 작전’은 그의 대표작이다. 한 편의 참전일지를 연상시키는 이 논문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장황하게 묘사한다.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하다.

저자는 에번스프리처드의 글은 심층적 독해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연구한 티를 내지 않고 보이는 것 그대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에번스프리처드의 글쓰기는 ‘강렬한 이미지 구축’이 특징이다. 마치 독자에게 슬라이드 쇼를 보여주듯 원시부족의 문화를 그린다. 그는 도표, 도형을 인류학에 적극 도입해 인류학을 시각화하는 데 공헌했다.

서태평양 부족 연구로 유명한 말리노프스키는 토착민의 관점에서 글을 썼다. 그는 최대한 연구 대상으로 삼은 타자의 문화에 동화되려 노력했다. 타자 속으로 들어가 자신, 즉 서구문화를 바라보고자 한 것이다. 저자는 말리노프스키의 글쓰기를 ‘자기폭로’로 규정한다. 가장 독창적인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기호, 교환, 코드, 대립 등의 개념을 과학과 예술분야에서 빌려와 훌륭하게 개조했다. 인류학 텍스트를 과학, 철학 반열로 끌어올린 레비스트로스의 업적은 독창적 글쓰기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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