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출세의 사다리(4권)…한영우 지음 | 지식산업사 | 460쪽 | 각권 3만~3만5000원
원로 역사학자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의 <과거, 출세의 사다리>가 이번에 고종 시기를 다룬 4권이 나오면서 완간됐다. 1권 ‘태조-선조대’가 출간된 지 꼬박 1년 만이다. 책은 5년간 과거 급제자 1만5000명을 조사분석한 결과물로 원고지 1만2000장 분량이다.
![[책과 삶]조선의 과거제는 하층민에게도 활짝 열린 신분상승 제도](https://img.khan.co.kr/news/2014/01/24/l_2014012501003716000292131.jpg)
한 교수가 밝힌 사실은 조선시대가 통념과 달리 신분이동이 자유로운 사회였다는 점이다. 신분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한 것은 과거 제도로, 이를 통해 신분이 낮은 과거 급제자가 대거 신분상승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선은 하층사회에서도 인재를 등용하는 개방적 관료 임용제도로 과거를 운영함으로써 명석한 젊은이들이 관료로 등용돼 신분 상승이 가능한 탄력적 사회를 유지하려 했다는 게 책의 골자다. 한마디로 조선시대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가 흔했다는 의미다. 한 교수는 이 같은 탄력적 사회 지향을 조선왕조가 500년 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꼽는다.
신분이 낮은 급제자 비율은 시대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태종 연간에는 50%였다가 세종대에 33%대로 떨어지며 광해군 시기 가장 낮은 14%대를 기록했다. 이후 17~18세기 중반 신분이 낮은 급제자는 16~37%에 머물렀는데 이때가 문벌 양반이 득세한 시기다. 한 교수는 조선이 폐쇄적 신분사회라는 학계의 통설이 통계적으로 들어맞는 경우는 조선 중엽에 국한된다고 본다. 18세기 이후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은 가파르게 상승한다. 고종 연간에는 그 비율이 58%에 이르며 정점을 찍었다.
고종 연간 급제자 통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평안도 출신 평민의 약진이다. 이 시기에 평안도는 급제자 269명을 배출했는데 이 중 신분이 낮은 사람이 265명에 달했다. 이는 전국 평균보다 40%가량 많은 수치로 고종의 북진정책 강화가 한몫했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다.
한 교수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문과 급제자 명단인 ‘방목’만 분석해 조선이 폐쇄적 신분사회라는 결론을 끌어냈다고 지적한다. ‘방목’만으로는 평안도 평민의 약진을 포착할 수 없을뿐더러 조선시대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규모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족보를 비롯해 <실록> <규사> 등 사료는 물론 인터넷을 뒤져가며 종합적으로 접근해 과거 급제자 통계를 한층 보완했다. 또한 급제자 연구를 바탕으로 한 기존 학설들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를 보는 시야를 넓히고 조선시대가 신분적으로 ‘열린 사회’였다는 점을 밝혔다.
실학자들이 권력 독점을 비판하고 문벌 타파를 부르짖은 이유는 17~18세기에 문벌사회가 고착화됐기 때문인데, 문벌사회는 조선시대의 일반적 경향이 아니라 일종의 경로 이탈 혹은 부작용이라는 게 한 교수의 시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은 인재 등용의 문을 활짝 열어 사회통합, 정치통합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과거, 출세의 사다리>는 조선시대 읽기 코드를 ‘폐쇄적 신분사회’에서 ‘사회통합 지향적 사회’로 대체한 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