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H5N8형 조류인플루엔자(AI) 전파의 주범으로 의심받는 가창오리는 원래 이름이 현재 북한명으로 알려져 있는 ‘태극오리’였다고 한다. 수컷의 머리에 초록과 노랑의 태극 무늬가 선명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온갖 오해와 궁금증을 자아내는 가창오리란 이름으로 굳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록이나 근거가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냥 알기 쉽게 태극오리로 부르는 게 어떨까 싶다.
가창오리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의 대표 겨울철새로서 손색이 없다. BBC 다큐멘터리 대작 <살아 있는 지구>에 한국의 자연 장관으로는 유일하게 등장하는 소재가 가창오리다. 수십만마리가 일제히 날아올라 허공을 화폭 삼아 벌이는 가창오리의 군무는 경이와 감동 그 자체다. 이를 보기 위해 겨울이면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탐조객이 서해안 일대를 찾는다. 전 세계 가창오리의 90%가 한반도 남쪽에서 겨울을 나기 때문이다.
여름에 러시아 레나강과 아무르강 일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한국·중국·일본 등지에서 월동하는 가창오리는 1920년대까지 동북아시아에 흔한 철새였다고 한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남획과 흉년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중국·일본에서만 극소수 월동하는 무리가 관찰될 뿐 한국에서는 통과조로만 여겨진 시절도 있었다. 가창오리가 국내에서 다시 발견된 것은 1984년 이후다.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5000마리 월동군이 관찰된 이후 개체군이 급격히 증가해 현재 적게는 30만, 많게는 80만 마리로 추산할 정도로 숫자를 회복했다.
다른 오리·기러기류와는 반대로 가창오리는 낮에는 넓은 호수의 중앙에서 휴식을 취하고 밤에 먹이활동을 한다. 해질 무렵에 벌이는 이들의 환상적인 군무는 야간 섭식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행동이다. 이들의 주된 먹이는 농경지에 떨어진 낙곡이다. 하지만 최근 볏짚을 압축 밀봉해 곤포 사일리지로 만든다든가 추수 후 논을 갈아엎는 영농법 등으로 가창오리의 주 먹이원이 갈수록 위협받는 실정이다. 먹이 부족에다 AI 혐의까지…. ‘미운 오리’ 신세가 된 한반도의 겨울진객 가창오리, 아니 태극오리의 수난은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