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에서 창녕까지… ‘4대강 사업 이후’ 현장 르포
설연휴를 앞둔 지난달 29일 경남 창원시와 창녕군을 잇는 본포교 위에서 낙동강을 봤다. 멀리 하류까지 모래톱과 습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2~3년 전까지 사진이나 그림 속에 보였던 하얗고 푸른 자연 풍경이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모래톱이 사라진 강 오른쪽 둔치에 새로 만들어진 대체습지는 외려 강보다도 턱없이 높아 습지생물들의 이동을 막는 장애물로 서 있었다.
경남 양산부터 창녕까지 낙동강변을 함께 둘러본 녹색연합 황인철 4대강현장팀장은 “본포교 습지는 강폭의 3분의 1이나 될 만큼 큰 하중도였다”며 “새들과 수생 동식물의 안식처 구실을 했는데 4대강 사업 후 송두리째 날아간 형태”라고 말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구글을 검색해봤다. 예전의 항공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본포교의 널찍한 하중도는 푸른 나무는 말할 것 없이 탁 트인 습지를 좋아하는 고니 같은 새들에게 휴식처 구실을 해주고 있었다.
낙동강 습지 탐사에 동행한 경남지역 환경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 김경철 습지보전국장은 “낙동강 주변에서는 4대강 사업 와중에 하천의 어느 부분에서 얼마만큼의 습지가 사라지고, 남아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4대강 공사 중에도 정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진 습지도 부지기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 연휴 전인 지난달 29일 경남 창녕군 부곡면 본포교에서 바라본 낙동강(위 사진)과 2010년 환경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찍은 본포교 습지(아래). 넓은 모래톱 위에 만들어져 어류와 저서류 생물들의 생활터가 됐던 습지가 4대강 사업이 끝난 현재 흔적만 남은 형태로 줄어들어 있다. 창녕 | 서성일 기자
▲ 준설·대형보 설치로 모래톱 섬 훼손·수위 상승
조감도의 ‘신규 습지’가 실제로는 ‘마른 땅’ 확인
공사장 곳곳 준설토 적치장, 생태계 파괴 ‘주범’
습지(濕地)는 물을 담고 있는 땅이다. 하천에서 침수됐다 드러났다를 반복하는 퇴적습지, 홍수 때 주기적으로 범람해 강 본류와 연결되는 제방 안쪽에 만들어진 배후습지, 늘 침수돼 있지만 수심이 얕아 수생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습지가 섞여 있다. 주로 모래톱 위에 만들어진 낙동강 습지들은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이자 철새들의 휴식처 역할을 해왔다.
전문가들은 4대강 사업 때 6m 수심을 맞추기 위해 일률적으로 준설하고 대형 보를 설치해 수위가 올라가면서 낙동강의 습지가 급감했다고 보고 있다. 아름다운 강 속 모래톱섬들도 이 와중에 상당수 파헤쳐졌다.
정부는 하중도를 없앤 강 둔치에 새로 대체습지를 만들었다. 29일 직접 둘러본 대체습지들은 대부분 제 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경남 양산시, 밀양시 삼랑진읍의 대체습지 모두 일자형 수로에 단순히 물을 가둬놓은 형태에 그치고 있었다.
국토교통부가 신규 습지라며 조성해놓은 곳 중에는 현재 물 한 방울 없는 마른 땅도 있었다. 4대강 사업 때 조성한 창녕군 송진리 수변공원 입구의 조감도에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과 습지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습지 조성 지역은 지금 무성한 갈대가 쓰러져 있는 맨땅이었다. 김경철 국장은 “이 신규 습지 위치가 주변 수면보다 무려 7~8m 이상 높아 지역에서는 공중습지라고 부른다”며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송진리에서 차로 5~6분 거리에 있는 용산리에서도 조감도에 그려져 있는 습지 예정지는 말라붙은 채 땅을 파헤친 자국만 남아 있었다.

경남 창녕군 도천면 송진쇠나루공원에 습지를 조성키로 했다고 알리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낙동강변에 있는 이 공터는 나무에 새집까지 달아져 있지만 공사가 이뤄지지 않아 맨땅으로 남아 있다. 창녕 | 서성일 기자
낙동강 천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준설토 적치장도 습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었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주기재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낙동강물환경연구소에 제출한 ‘낙동강 본류 및 주요 지천의 습지 평가’ 보고서는 둔치의 적치장이 강과 둔치 간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생물 서식처로서의 가치를 낮추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철새처럼 이동성이 높은 생물들은 적치장 높이·규모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강변이 아닌 내륙 쪽으로 적치장을 이동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건설업자들이 방치해둔 준설토도 둔치 높이를 높이면서 습지의 생물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 낙동강 둔치에는 주변 땅과 유독 높이가 다르거나 흙 색깔이 달라 최근에 복토된 것으로 보이는 준설토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습지 면적이 급감한 사실은 경향신문이 입수한 정부 보고서에서 숫자로도 확인되고 있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2일 공개한 ‘4대강 살리기 사업 사후환경영향조사 분석, 평가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낙동강, 금강, 영산강, 한강의 습지 면적은 2010~2012년 사이 41%나 급감했다. 이 보고서는 4대강 사업 전 실시된 환경영향평가와 사업 후 실시된 사후환경영향평가의 결과를 비교 분석한 것이다. 공사 전후에 하천 습지가 얼마나 감소했고, 어떻게 파괴됐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첫 보고서이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연구팀이 지난해 정부에 제출한 낙동강 보고서에도 다수의 습지 면적이 급감한 사실이 적시돼 있다. 부산 덕포동의 삼락습지 25만㎡는 완전히 없어졌고, 칠곡군 낙산리의 낙산습지, 창녕군 남지읍의 박진교습지와 월평습지, 김해시 감노리의 감노습지, 김해시 도요리의 도요습지, 김해시 마사리의 딴섬습지 등 6곳도 면적이 70~90%가량 줄어들었다.
그러나 습지 면적이 급감한 후에도 4대강 사업을 추진한 국토부나 습지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환경부 모두 습지 위치나 면적,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생태 변화 등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을 평가하고, 파괴된 하천 생태계를 복원하는 사업에서 습지 현황을 정밀히 조사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습지 면적 감소가 습지를 기반으로 삼는 생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전동준 환경정책평가원 연구위원은 “습지 면적이 감소하면서 생물 서식처로서의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며 “한강, 낙동강, 금강에서 철새와 어류, 저서생물의 종 수와 개체수가 대체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강과 낙동강에서는 법적보호종 중 4대강 사업 전 습지 등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맹꽁이, 남생이, 표범장지뱀이 자취를 감췄다. 한강과 낙동강, 금강에서는 각각 금개구리와 흰수마자, 미호종개가 사라진 상태다. 수질은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을 기준으로 한강, 낙동강, 영산강은 다소 악화되었으며 금강은 다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위원은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인한 수생태계의 영향은 우려할 수준”이라며 “습지 면적의 절대적 감소와 보 설치에 따라 정수(서 있는 물)로 수환경이 변화하면서 하천 생태계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천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면밀한 검토와 후속 대책이 필요하고, 사라진 습지 복원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