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비트겐슈타인은 10년 동안 잠적해서 무얼 했을까

서영찬 기자

▲ 비트겐슈타인 침묵의 시절 1919~1929…윌리엄 바틀리 3세 | 필로소픽 | 273쪽 | 1만6000원

흔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나눠 설명된다. 전기 철학은 <논리철학논고>에서 전개한 사유를 기반으로 하고 후기 철학은 유작인 <철학적 탐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철학서는 언어에 대해 사뭇 다른 사유를 펼치고 있다.

[책과 삶]비트겐슈타인은 10년 동안 잠적해서 무얼 했을까

언어는 세계를 모사한다는 관점에서 언어의 기능과 한계를 논리적으로 분석한 <논리철학논고>에 반해 <철학적 탐구>는 언어를 모종의 게임으로 파악, 세계 모사라는 언어의 기능적 한계 너머를 다룬다. 철학적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20세기 초 가장 열렬히 갈채받은 철학자의 이 간극은 수십년간 당연시됐고 그 원인은 풀리지 않았다. 이 같은 철학적 미스터리는 어느새 비트겐슈타인 고유의 특징으로 굳어졌다. 저자 바틀리는 이 미스터리 규명에 나섰다. 그가 주목한 것은 1920년대 비트겐슈타인의 행적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를 탈고한 후 학계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장에서 사회로 복귀한 직후이다. 그때부터 대학 강단으로 돌아오기까지 10년이 걸렸는데 저자는 이 어둠에 갇힌 ‘암흑의 10년’을 추적했다.

이 시기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오지 마을로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그는 왜 시골 선생님이 됐고 무엇을 했을까. 주류 학계는 이 문제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과 무관하다거나 천재의 일탈적 기행으로 치부하며 외면했다. 하지만 저자는 시골 교사로 활동한 시기를 파헤치며 이에 반박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는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막대한 재력을 지닌 비트겐슈타인 가문은 교육개혁 프로그램을 지원했는데 비트겐슈타인도 이에 동참했다. 많은 엘리트 청년이 오지 학교로 내려갔으며 비트겐슈타인도 그중 하나였다. 어린아이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면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습득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면서 문법, 맥락, 방언 등 언어에서 소통 메커니즘이 중요함을 인식했다. 여기서 저자는 언어는 게임이라는 후기 철학의 맹아를 발견한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은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암흑의 10년 동안 서서히 발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또한 비트겐슈타인이 겪은 방황, 자살 강박증, 꿈 등을 추적하며 이 세기의 천재가 동성애자였음을 암시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동성애자라는 주장은 1975년 이 책을 통해 처음 공식 제기됐다. 동성애 주장이 학계에 던진 파문은 두말할 것 없이 엄청났고 비트겐슈타인 전·후기 철학을 잇는 통로 찾기라는 저자의 주제의식은 가려졌다. 이 책에서 동성애 부분은 몇 쪽도 안될뿐더러 지엽적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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