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AI)는 2003년 이후 11년 동안 5번이나 발생했다. 만성화된 전염병이 됐다. 지난달 16일 전북 김제에서 시작된 AI는 영호남과 충청, 경기까지 확산돼 사실상 방역망은 뚫렸다. 올해 살처분된 가금류는 약 300만마리, 2003년 이후 지금까지 합하면 약 2500만마리나 된다. 이번 AI로 판로가 막힌 전북 김제의 한 양계 농장주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I가 발생하면 가금류의 통제가 엄격하게 이뤄져 주변의 농장주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 결국 양계 농민들을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아넣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됐다. 현재 양계 방법은 AI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것은 공장식 축산이다. 닭장의 구조를 보면 닭 한 마리에 배당된 면적은 가로, 세로 15㎝에 불과하다. 닭들은 몸을 돌리지 못할 정도로 빼곡한 닭장에서 꼼짝없이 사료만 먹어야 한다. 병아리들을 빨리 키우기 위해 24시간 불을 켜놓거나 일정 간격을 두고 불을 켰다 껐다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렇게 좁은 환경에서 닭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영국의 가금연구소는 암탉이 쉬고 있을 때 차지하는 물리적 면적은 637㎠, 새장에 넣을 때는 적어도 1681㎠라고 보고 있다. 날개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새장에서 오로지 사료만 먹는 환경에서는 닭들이 약해지고,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항생제를 많이 투여할 수밖에 없다. 항생제를 써도 바이러스 감염을 100% 막을 수는 없다. 그중 한 마리라도 감염되는 닭이 있으면 AI는 급속하게 퍼지게 된다. 닭똥 1g에 10만마리에서 100만마리를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내성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적게는 25%, 많게는 75%까지 항생제가 배설물을 통해 배출된다.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이런 공장식 사육장을 바이러스와 미생물이 우글거리는 ‘마녀의 양조장’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식으로 사육된 닭이 인간의 몸에 좋을 리 없다.
애꿎은 철새가 AI를 옮겼다는 예측도 나왔지만 학계에서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철새가 축산 가금류보다 면역력이 강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금까지 철새가 AI를 옮긴 사실은 보고된 적이 없다. 이번에 시베리아에서 온 20만마리의 가창오리 중 100마리 정도가 AI로 폐사했는데, 가창오리가 양계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가창오리는 11월 서산 천수만에 먼저 왔다가 날이 추워지면 고창 동림저수지, 해남 고천암호로 옮긴다. 가창오리가 AI를 옮겨왔다면 천수만 인근에서 처음 발병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문제는 AI의 피해자가 도시와 떨어져 있는 시골의 양계업자뿐 아니라 대도시의 소비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전염병 중 70%는 동물로부터 왔다. 학자들은 홍역, 결핵, 천연두, 백일해, 인플루엔자를 동물에서 발생해서 인간에게 옮겨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 B, C형으로 나뉜다. A형이 바로 인간과 동물 모두 감염시킬 수 있는데, AI도 인수공통전염병이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게 한국에서는 사람까지 감염된 경우가 없었으나 앞으로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중 발병한 스페인 독감은 1차 대전의 사망자 800만명보다 3배 이상 많은 25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학자들은 당시 독감이 돼지 인플루엔자가 인간에게 옮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세계적으로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시각이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결코 생태계의 지배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종의 다양성은 인간의 생존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하다못해 모기도 종이 다양해야 인간에게 이롭다는 학설이 있다. 모기 종이 다양하지 않아 말라리아 모기만 창궐하면 말라리아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살처분 방식도 재고해야 할 때가 됐다. 일괄적으로 3㎞ 이내의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며, 옳으냐는 것이다. 종에 따라, 때로는 사육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면역을 가지고 있다. 스위스는 이미 1981년부터 좁은 새장을 없애기 시작했으며, 네덜란드, 스웨덴 등도 1980년대, 1990년대부터 비좁은 닭장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동물에게 최소한의 기본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인간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