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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소시효는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입력 2014.02.13 21:18

  • 김석종 기자

이단 연구 고 탁명환 소장 20주기 맞아 유족들 추모 행사

탁명환(1937∼1994·사진) 월간 ‘현대종교’ 발행인 겸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은 1960년대부터 30년 넘게 각종 신흥종교의 정체를 교회와 세상에 알리는 일에 앞장선 이단·사이비 종교 연구의 선구자다. 기독교의 정통 가르침에서 벗어난 반사회적 활동으로 소위 기독교 이단으로 분류되는 단체의 실상을 거침없이 폭로했다.

그의 활동에는 늘 위험이 따랐다. 동방교, 장막성전, 영생교, 구원파 등 이단 사이비 종교 세력의 소송과 협박, 테러, 청부살해 기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1994년 2월18일 밤, 집 앞에서 괴한이 휘두른 칼에 찔려 숨을 거뒀다. 검거된 범인은 ㄷ교회 신자 임모씨(당시 26세)였다. 당시 ㄷ교회(현재 ㅍ교회로 개칭) 박모 목사는 탁 소장에 의해 이단으로 지목돼 개신교계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 연동교회에서 열린 탁명환 소장 20주기 추모식.  탁지원·지일·지웅씨(왼쪽부터)  3형제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이단 뿌리뽑기 활동을 하고 있다.  지웅씨는 유족들이 20년 동안 간직해온 피묻은 셔츠를 꺼내보였다. | 현대종교 제공

지난 10일 서울 종로 연동교회에서 열린 탁명환 소장 20주기 추모식. 탁지원·지일·지웅씨(왼쪽부터) 3형제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이단 뿌리뽑기 활동을 하고 있다. 지웅씨는 유족들이 20년 동안 간직해온 피묻은 셔츠를 꺼내보였다. | 현대종교 제공

▲ 탁 소장 살해 관련 목사 사과 요구
사건 당시 ‘피묻은 와이셔츠’ 공개

▲ 한기총은 해당 목사 이단서 해제
“교권만 관심, 이단과 야합” 비난

탁 소장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 연동교회에서 그의 추모행사가 열렸다. 유족들, 생전 탁 소장과 뜻을 같이했던 이단 연구가, 신학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추모식은 조촐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이단·사이비 종교 연구와 피해방지 활동을 벌이고 있는 아들 3형제는 이날 ‘유족들의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는 다만 ㅍ교회 원로목사인 박씨의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를 원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공소시효는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장남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50)가 ㅍ교회 박 목사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동안 셋째 지웅씨(41)는 종이상자에서 아버지가 피살 당시 입었던 피묻은 와이셔츠를 꺼내놓았다. 황토색으로 바랬어도 핏자국은 여전히 끔찍했다. “범인… 찔렀어…경찰….” 사건 당시 비명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달려나가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들은 둘째 지원씨(46)는 그날의 아픔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 탄식하며 눈을 감았다.

이날 추모식 분위기는 그렇게 내내 숙연하고 비장했다. 때마침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이 탁 소장 살해사건과 관련이 있는 ㅍ교회 박 목사에 대해 ‘이단 해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기총의 이단 해제 조치는 최근 들어 한국 교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한기총은 지난해 1월에도 ‘다락방’(류모 목사)이란 단체를 이단 목록에서 제외해 소속 교단들의 반발을 샀다. 한기총 소속 교단들은 점점 한국교회연합으로 빠져나갔다. 이번 ㅍ교회 이단 해제는 한기총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과 예장 고신 교단마저 한기총을 탈퇴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한기총은 류 목사와 박 목사를 이단으로 거론하면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공문을 각 교단에 보내놓고 있다.

추모식 후 탁 교수에게 ‘피묻은 셔츠’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목숨과 맞바꾼 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가 여전히 이단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한기총이 아버지 살해사건과 관련이 있는 박 목사를 이단에서 해제한 데 대한 항의의 뜻”이라고 말했다.

“선친 죽음의 배후세력 의혹이 가시지 않은 박씨에게 이단 해제라는 면죄부까지 준 것이 우리 유가족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 한국 교회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단과 싸운 아버지를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그게 바로 교권과 정치에만 관심을 갖는 이들이 이단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욕을 위한 야합을 일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탁 교수를 비롯한 아들 3형제는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못다 이룬 사명을 물려받았다. 탁 교수는 “누구도 섣불리 나서려 하지 않는 일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평생 이단 사이비 종교단체와 외로운 싸움을 벌인 선각자, 누구보다 앞서 행동하며 목숨까지 바친 순교자였다”며 “이런 귀한 사역을 물려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탁 교수는 어렵게 미국과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학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며 아버지가 창간한 이단 신흥종교 전문 잡지인 월간 ‘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아버지가 30년간 모아온 자료와 글 등을 정리해 <사료 한국의 신흥종교>라는 책을 발간했다.

둘째 지원씨는 이단 사이비단체의 실체를 파헤쳐 세상에 알리는 ‘이단 감별사’ 역할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신학대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의 일을 도왔던 그는 사건 직후 목사의 꿈을 접고 바로 월간 ‘현대종교’ 발행인을 맡았다. 국제종교문제연구소에서 이름을 바꾼 현대종교 소장을 겸하고 있다. 그 역시 100건 넘는 고소·고발과 함께 협박도 수없이 당하고 있다. 탁지원 소장은 “이 땅에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20명이 넘고 자칭 재림주는 50명이 넘는다”며 “이단과 싸우는 것은 결국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웅씨는 일본 성공회 도쿄교구 신부로 활동 중이다. 그도 일본에서 이단 종교단체 피해자들을 돕는 일에 팔을 걷고 있다.

탁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이단이 여전히 활개치는 이유는 한국 교회가 세속화되고 부패한 탓”이라며 “교회 개혁과 이단·사이비 대책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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