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지음 | 메디치 | 328쪽 | 1만6000원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은 글쓰기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글쓰기 고수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대통령 재임 시절 연설문 작성에 공을 많이 들였다. 연설문 하나를 준비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연설비서관들이 써온 연설문을 고치고 또 고쳤다. ‘글쟁이’ 연설비서관은 매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책과 삶]청중의 마음 얻는 글을 써라](https://img.khan.co.kr/news/2014/02/21/l_2014022201003018200249611.jpg)
저자 강원국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아래에서 8년간 연설비서관을 지냈다. 책은 저자가 청와대 시절 경험한 김대중과 노무현의 글쓰기 태도 및 특징을 기술한다. 더불어 이들의 글쓰기 노하우를 통해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이 나오는지, 그 비법을 제시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간결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좋아했다. 현란하고 추상적인 표현은 싫어했다. 또한 청중의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청중의 언어를 쓰려고 했다. 청중과의 교감을 중시했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중국 방문 중 칭화대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이라는 표현 대신 ‘인민’이라고 말해 국내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저자는 ‘인민’을 선택한 것이 노 전 대통령이 청중과 교감하려 한 의도라고 설명한다.
노 전 대통령은 곧잘 글쓰기를 음식에 비유했다고 한다. “메인 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삼계탕이면 삼계탕. 한정식같이 이것저것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어머니가 해주는 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노 전 대통령이 저자에게 했다는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은 경청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대화의 요체는 수사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심리학에 있다”는 생전의 말은 글쓰기에 대한 그의 기본자세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비서관이 써서 올린 연설문이 그대로 통과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연설비서실에서는 대통령의 연설문 수정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기도 했다. 단어 몇 자 고쳐 내려오면 만점 수준이고, 한 단락 긋고 좌우 여백에 다시 쓰면 ‘매우 양호’에 속한다. 가장 심각한 사태는 대통령이 직접 녹음한 테이프가 내려오는 때이다. 비서실은 이를 ‘폭탄’이라 불렀다고 한다.
남의 생각을 읽어내어 글로 표현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이다. 저자는 대통령 연설문 작성하는 일을 안개 속에서 과녁 맞추기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보다 노 전 대통령의 과녁을 맞히는 일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의 과녁은 정지한 반면 노 전 대통령은 움직이는 과녁이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하나의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시로 연설문을 고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