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준설 앞둔 임진강
24일 오후 찾은 임진강은 흩뿌려놓은 듯 쌓인 여러 모래톱을 품은 채 노랫말처럼 ‘흘러흘러 내리고’ 있었다. 초읽기에 들어간 국토교통부의 하천정비사업 후에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유로 옆 칼섬에는 멸종위기종인 개리가 흰뺨검둥오리와 쇠기러기 사이에서 북쪽으로 날아오를 채비를 하느라 먹이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멸종위기종 흰꼬리수리는 뭇 새들과는 멀찌감치 떨어진 모래톱 위에서 남녘땅을 응시했다.
강을 함께 둘러보던 파주환경운동연합 박은주 운영위원은 장산리 장산전망대에서 마정지구 쪽 하중도인 모래섬 초평도를 가리키며 “꼬마길앞잡이·청줄보라잎벌레 등 쉽게 보기 힘들어진 곤충들의 낙원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분단의 아픔이 남긴 뜻밖의 선물이었다. 개발의 손이 닿지 않은 강물이 자연스레 범람하고, 줄어드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다른 강에서 찾아보기 힘든 생물상이 나타나는 임진강은 ‘생물다양성의 보고’였다.
임진강은 하굿둑·방조제·보 없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바닷물과 민물의 유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곳이다. 박 위원은 “주민들이 겨울철 밀물 때 물이 늘어나는 것을 ‘물이 서서 들어온다’고 표현한다”며 “유일하게 바닷물이 들어와 얼음이 ‘쩡, 쩡’ 소리를 내며 깨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강”이라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자유로에서 철책 너머로 바라본 임진강 하류의 칼섬 습지 주변에서 새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 환경부가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추진하기도 했던 칼섬 주변의 습지는 국토교통부의 하천정비공사 예정지로 잡혀 강 바닥을 준설하는 작업을 앞두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환경부, 작년까지 습지보호구역 추진하다 ‘자기 부정’
국토부, 군남댐으로 해결했다던 홍수 핑계로 또 준설
![[환경규제가 풀린다]댐 이어 준설까지… 생물다양성 천국 임진강에 ‘5대강 사업’ 암운](https://img.khan.co.kr/news/2014/03/25/l_2014032501003830500293534.jpg)
그러나 임진강은 지금 국토부 서울국토관리청이 추진하는 대규모 준설 위기를 맞고 있다. 강 수위를 낮춰 1990년대 큰 홍수 피해를 입었던 문산 등 지역의 수해를 방지한다는 목적이다. 지난해 11월 서울국토청이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 임진강 하천정비공사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는 임진강·문산천의 합류지점부터 초평도 하류까지 14㎞ 구간의 하도 준설과 제방 보강공사 계획이 담겨 있다.
이 초안을 검토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하도 준설은 지나치게 큰 환경파괴를 일으킨다”며 국토부가 추진하는 방식의 공사에 ‘불가’ 의견을 제시했다. 연구원은 검토의견에서 “사업 구간은 하굿둑이 없는 국내 유일의 대하천인 한강 하구와 합류되는 구간으로 하천의 자연성이 매우 잘 유지되어 있다”며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홍수방어 대책이 시행된 바 있고, 하도정비 계획보다는 천변저류지 개발, 옛 하도 복원 등의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국토부는 군남댐 준공 당시 ‘군남홍수조절지 조기운영과 홍수예경보 시스템의 완벽한 구축을 통해 하류 주민의 인명 및 재산 피해로부터 안심할 수 있게 됐다’고 공식 천명했다”며 국토부의 ‘홍수피해 예방’ 명분도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강유역환경청은 평가연구원의 검토 의견을 받고서도 국토부와의 환경영향평가 초안 협의에서 “홍수 방어를 위한 불가피한 부분의 준설은 필요하다”며 국토부의 하도 준설을 사실상 허용했다. 한강유역환경청은 “사업구간은 하천의 자연성과 생물다양성이 우수하므로 지속가능성의 원칙에 따른 하천정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준설은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환경규제가 풀린다]댐 이어 준설까지… 생물다양성 천국 임진강에 ‘5대강 사업’ 암운](https://img.khan.co.kr/news/2014/03/25/l_2014032501003830500293535.jpg)
환경단체들은 1235만1000㎡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에서 준설이 실시되면 조류의 휴식처가 대부분 사라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박 위원은 “인근 연천지역 두루미들이 군남댐에서 물을 채운 탓에 잠자리를 잃은 뒤 임진강 초평도 모래톱으로 이동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준설 작업이 시작되면 두루미들은 쉴 곳이 없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 환경부도 지난해까지 임진강 일대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려 추진했다. 환경부는 2012년 4월 이 지역에 두루미·매·저어새 등 멸종위기종 24종이 서식 중이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해 습지보전법상 지정요건에 부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세계적 멸종위기 조류의 이동경로에서 중간기착지 역할을 하는 동시에 황복·뱀장어 등 회유성 어종의 주요 산란지이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군남·한탄강댐을 지으며 홍수 피해로부터 안심하라고 홍보했다가 다시 홍수 피해를 문제 삼는 국토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정하려다 바닥 준설을 허용해주는 환경부에 대해 “모두 자기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파주환경운동연합 노현기 사무국장은 “홍수 피해를 일으켰던 하천은 임진강 지천인 문산천과 그 지류인 동문천인데 임진강을 준설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먼저 큰 댐에 의해, 다시 하천 준설과 제방공사로 인해 할퀴어질 임진강에는 4대강을 잇는 ‘5대강 사업’의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