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헤밍웨이·케인 작품 실망”… 동료 작가·자기 작품도 ‘비판의 도마’](https://img.khan.co.kr/news/2014/04/11/l_2014041201001659500148061.jpg)
▲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레이먼드 챈들러 지음·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56쪽 | 1만2800원
1930~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문학 장르인 하드보일드는 폭력적 사건을 감정과 수사를 배제한 채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하드보일드 소설에는 비정과 냉정이 배어 있다고 한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책은 그가 독자, 잡지 편집자, 동료 작가 등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 놓았는데 하드보일드 특유의 비정하거나 냉정한 어투가 강렬하다. 글쓰기에 대한 견해, 동료 작가 평가, 자기 작품에 대한 품평, 일상 경험담 등이 에두르는 법 없이 직선적으로 표현된다.
챈들러는 잡지 등에 잡다한 글을 쓰는 생계형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40대 초반에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싱겁다. 그는 크루즈 여행 중 무료함을 달래려 통속적인 펄프 소설들이 실린 잡지를 펼쳐보곤 했다. ‘싸구려 소설들’을 읽던 그는 문득 “나도 이런 글을 써서 공부하면서 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첫 작품이 나왔다.
이 늦깎이 소설가의 돈벌이는 괜찮았을까. 소설은 인기를 끌었지만 “글로는 전혀 돈을 벌지 못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그에게 부를 가져다 준 것은 할리우드였다. 그는 할리우드에 진출해 수년간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사와 공동 작업했다. 이때 적잖은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할리우드 생활은 그와 맞지 않았고 환멸을 느꼈다. 그는 할리우드를 허세, 가짜 열정, 돈 분쟁, 끝없는 음주 등이 만연한 곳이라며 가혹하게 비판한다. 그의 비판은 평단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쏟아진다. 추리소설을 홀대하는 평단의 거만과 편협을 비정한 어투로 몰아붙인다.
흥미롭게도 하드보일드의 에이스 헤밍웨이조차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그는 헤밍웨이 작품들을 꼼꼼히 읽어본 후 “작품 90%가 빌어먹을 자기복제”라며 한 작품 빼곤 “전부 같은 몸에 다른 바지를 입은” 것이라고 결론 짓는다.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간 냉혹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 지난 편지에선 헤밍웨이를 다소 긍정적으로 평하는데 이를 통해 챈들러가 틀에 얽매이지 않고 호불호가 명확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몰타의 매>의 대실 해밋과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쓴 제임스 케인은 챈들러와 더불어 하드보일드 시대를 주름잡은 작가다. 같은 시대 같은 장르에서 나란히 스타가 된 동료 작가에 대한 챈들러의 평가는 엇갈린다. 챈들러는 케인을 “문학계의 쓰레기”라며 그의 작품에 야박한 점수를 준다. 반면 해밋에 대해선 대단한 작가라고 치켜세우며 실력에 비해 과소 평가됐다고 말한다.
이 밖에 서머싯 몸, 스콧 피츠제럴드 등 그와는 다른 장르의 소설가들에 대한 단상과 평가도 눈길을 끈다.
매우 사적이지만 형식과 예의를 의식하기 마련인 게 편지글인데 챈들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소설 속 그의 페르소나 탐정 필립 말로를 연상케 한다. 말로는 영화 <빅 슬립>에서 험프리 보거트가 열연한 후 냉정한 탐정의 전형이 됐는데 챈들러는 자신이 제작자였다면 캐리 그랜트를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