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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줄 대신 넥타이 매라’는 기업

입력 2014.05.13 21:56

수정 2014.05.1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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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철응 기자

돈과 효율, 속도 때문에 안전은 뒷전… 산업현장 ‘생명 경시’

고층서 작업 에어컨 기사에 안전줄 등 보호장구 안 줘

이유는 ‘회사 이미지 관리’… 업체 “정부, 사실관계 조사”

경기 의정부시에서 일하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 최모씨(35)는 지난해 아찔한 경험을 했다. 폭염이 절정이던 8월 어느 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하필이면 아파트 17층의 에어컨 실외기 분해작업을 해야 했다. 그는 베란다 난간 위를 오르는 자신의 구두를 보는 순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회사는 ‘삼성’의 이미지를 위해 구두와 넥타이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었다. 지상 수십m 위에서 아무런 보호장구도 없이 비를 맞으며 매달렸다. 실외기 위에 조심스레 올린 오른발이 빗물에 쭉 미끄러졌다. 순간적으로 오른손을 뻗어 난간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이 충격으로 손목이 골절됐다.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었지만 작업 환경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최씨는 “회사가 고공 작업에 필수적인 안전줄은 지급하지 않으면서 복장 관리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고객 집에 방문하기 전 복장 상태를 찍어서 회사에 보내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깔게 할 정도”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한 수리기사가 안전줄도 없이 고층 아파트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작업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다른 수리기사는 구두를 신고 넥타이를 맨 채 고층 아파트의 에어컨 실외기 위에 엎드려 일하고 있다(가운데). 수리기사들은 고객 방문 전에 복장 사진을 찍어 회사로 보내도록 요구받고 있다고 말했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

삼성전자서비스의 한 수리기사가 안전줄도 없이 고층 아파트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작업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다른 수리기사는 구두를 신고 넥타이를 맨 채 고층 아파트의 에어컨 실외기 위에 엎드려 일하고 있다(가운데). 수리기사들은 고객 방문 전에 복장 사진을 찍어 회사로 보내도록 요구받고 있다고 말했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

▲ 에어컨 수리기사
무거운 것 옮기는 일 많은데 구두 안 신으면 작업 안 시켜
고객 방문 전 복장 확인까지

▲ 열차·항공기 승무원
치마 입은 채 고객 서비스… 승객 대피 비상상황 때 ‘족쇄’
파견직 안전업무 하면 ‘불법’

▲ 조선소 노동자
추락방지망·안전줄 등 기본 시설 없어 사고 빈번
정부, 안전보다 체불 집중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에서 수리기사로 일한 지 18년째인 임모씨(42) 역시 안전줄을 받지 못한 채 작업하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고 했다. 드럼세탁기 내부를 점검하다 작동 버튼이 눌려 넥타이와 함께 목이 끌려들어가는 아찔한 경험도 했다. 임씨는 “공장 노동자처럼 무거운 걸 들고 옮기는 게 일상인데도 구두와 넥타이를 착용하지 않으면 아예 일을 못하게 했다”면서 “몇 만원 되지도 않은 안전줄 비용을 놓고, 원청에서는 지급했다 하고 소속된 협력사에서는 그런 건 없다고 했다.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보호장비가 없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 100㎏이 넘는 냉장고를 혼자 옮기다 허리를 다쳤으나 회사는 치료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고 했다. 금속노조는 전국 48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실태를 조사한 결과, 최근 3년간 21만여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적발했다며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정작 돈 때문에, 회사 이미지 때문에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현장의 작업 환경을 관리할 안전감독관 수는 턱없이 모자라는 나라에서 생명의 가치가 돈과 효율, 속도에 묻힌 셈이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이에 대해 “협력업체와 수리기사들 사이에 말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 노동부에서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KTX 승무원들은 까다로운 복장 규정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철도노조 조사 결과, 여승무원들은 반드시 치마를 입은 채 무릎을 굽혀 고객 서비스를 해야 하며, 머리카락 염색은 금지다.

립스틱과 매니큐어는 지정된 색이 있고, 귀고리는 귀 밑 1㎝ 이내에서 단순한 디자인만 허용한다. 역사 내에서 걸을 때는 2열 종대로 걸어야 하고, 회사에서 지정한 가방만 가지고 다녀야 한다.

정작 안전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승무원들은 코레일에 파견 된 노동자여서 직접적인 안전 업무를 하면 불법이 된다. 열차에 화재가 나도 소화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놓여 있다. ‘비상시 대응 업무 매뉴얼’에는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승무원의 역할을 안내방송, 안전 하차 및 대피 유도, 환자 보호 등으로 국한하고 있다. 철도노조의 설문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사고 대응 안전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답한 승무원은 77%에 이른다.

서울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국제선 신입 승무원들이 바지를 입은 채 비상탈출훈련(위 사진)을 하고 있으나 정작 근무 중에는 모두 치마를 입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국제선 신입 승무원들이 바지를 입은 채 비상탈출훈련(위 사진)을 하고 있으나 정작 근무 중에는 모두 치마를 입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고 때는 여승무원들의 치마 복장이 도마에 올랐다. 비상시 승객을 탈출시키는 안전 업무가 승무원의 주된 임무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나는 다른 항공사와 달리 “아름다운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치마 복장을 고집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등을 받고서야 지난해 4월 신청자에 한해 바지를 지급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에서는 지난 두 달 동안 무려 8명의 하청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 대부분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갖춰지지 않아 발생한 원시적 사고였다. 추락방지망과 안전줄을 설치하지 않거나, 비 내리는 밤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작업을 강행한 것 등이 사고 원인이었다. 김모씨(41)는 지난달 21일 첫 출근날 안전교육도 없이 투입됐다가 화재로 숨졌다. 지난 3월에는 가설물이 붕괴되면서 김모씨(52)가 바다로 추락했는데 회사 측은 119구조대나 해양경찰에 구조 요청을 하지 않고 사내 잠수반만 기다렸다. 결국 김씨는 사고 후 1시간20분이 흐른 뒤에야 숨진 채 끌어올려졌다. 산업현장의 후진적 안전관리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은 임금 체불 등에 업무가 집중돼 있고, 산업안전감독관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산업안전감독관이 300명가량에 불과해 모든 사업장을 한 번씩만 돌아도 10년은 걸리고, 일부 민간 산업안전관리사들의 대행 검사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서 “안전관리만 놓고 보면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고 말했다. 박 노무사는 “일본만 해도 추락 사망은 상상도 못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물망조차 설치하지 않아 다반사로 일어난다”면서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는 제도와 안전투자 확대가 선행돼야 안전검사의 수준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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