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말한다

“노란 리본만 봐도 울컥하는데… 어른들은 공부만 바라”

정리 | 박은하 기자

(2) 학생 집담회

“해체해야 할 대상 있다면 입시에만 매달리게 하는 교육”

학생들은 세월호 침몰사고를 기억하고 애도할 때에도 자유롭지 못했다. 고등학생들은 또래 친구들을 위한 추모행사를 열기 위해 교사 등 주변 어른들에게 “정치세력과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했다. 지난 17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추모촛불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대거 경찰에 연행됐다. ‘가만히 있으라’는 요구는 세월호 밖에서도, 사고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25일 고등학생·대학생·탈학교 활동가 등 5명이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주된 희생자들의 또래로서 각자가 경험한 충격과 아픔을 털어놓기 위해서다. 이들은 친구의 죽음과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추모집회 참여, 옷에 노란 리본 달기 등 각자의 자리에서 애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10대는 미숙하다’ ‘정치는 불온하다’는 기성세대의 관점 때문이었다.

이들은 윗사람의 명령에 따르기를 요구하는 교육을 바꿔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기부터 정치에 적극 뛰어들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집담회는 경향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2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단원고에 이웃한 안산 경안고 학생회장 우숭민군(18), 청소년의회 기자단에서 활동하는 세화여고 1학년 최고은양(16), 탈학교 활동가 최훈민씨(19), 대학생 고준우씨(19·고려대 사회학과), ‘가만히 있으라’ 침묵시위를 제안한 용혜인씨(24·경희대 정치외교학과)가 참석했다.

지난 25일 경향신문이 마련한 집담회를 마친 고교생과 대학생 참석자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문구가 쓰여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왼쪽부터 고려대 1학년 고준우씨, 탈학교 운동가 최훈민씨, 세화여고 1학년 최고은양, 경희대 4학년 용혜인씨, 경안고 3학년 우숭민군.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지난 25일 경향신문이 마련한 집담회를 마친 고교생과 대학생 참석자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문구가 쓰여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왼쪽부터 고려대 1학년 고준우씨, 탈학교 운동가 최훈민씨, 세화여고 1학년 최고은양, 경희대 4학년 용혜인씨, 경안고 3학년 우숭민군.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 질문할 수 없는 학교선 수학여행이 유일한 숨통
교통사고 난다고 차 없앨 건가

▲ ‘아이들 보호’ 명분으로 사고·행동 틀에 가둬

▲ 수련시설 미봉책 반복… 우리 사회 안 달라져
끊임없이 관심 가져야

-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40일이 지났다. 또래들 분위기는 어떤가.

우숭민 = 안산은 평준화 지역이라 어느 고교 학생들이나 단원고에 친구들이 4~5명 이상 있고 또 이들이 희생됐다. 친구를 잃은 상황인데 무언가 해결됐다거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하는 논의가 전혀 의미가 없다. 집담회 제의를 받고 엊그제 고2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세월호에 관해 언급하기를 꺼렸다. 그 이유가 사건을 잊어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하면 울 것 같아서였다. 지금도 시내 곳곳에는 실종자들의 생환을 기원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고, 노란 리본만 봐도 여전히 울컥울컥한다는 친구들이 많다. 유가족 얼굴을 떠올리면 울 것 같다. 언젠가 나도 봤을 분인데. 반면 안산에서조차 우리는 학생이니만큼 추모와 애도보다는 공부에 집중하기 바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 말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고운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다.

최고은 = 우리 학교 수학여행 일주일을 남겨놓고 사고가 발생했다. 여행은 취소됐고, 사고 이후 다들 공부를 하지 못했다.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실종자, 생존자 수만 확인했다. 뉴스 보고 바로 울음을 터뜨리는 친구가 있었다. 매일 잠자려고 불 끄고 누우면 자신이 배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호소하는 친구도 있다. 꿈이 기자라 여러 가지 기사를 읽는데, 날마다 내용이 바뀌어 있다. 선장 탓이라고 했다가 종교집단 탓으로 몰아갔다. 일본에서 낡은 배를 사들여 개조했다는 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의문만 계속 생긴다. 다만 학교 전체로 봤을 때는 처음에 울고 안타까워하던 분위기에서 좀 무뎌졌다는 느낌도 든다.

용혜인 = 오늘도 주말 시위로 연행된 친구들의 면회를 다녀왔다. 나 자신은 취업준비에 몰두해오다 사고 소식으로 슬프고 무기력하게만 지냈는데 지난달 19일 변화가 생겼다. 실종자 가족들이 조속한 구조를 촉구하며 진도에서 청와대로 올라가려는 것을 경찰이 막아서는 것을 보면서다. 사고 이후 정부가 가장 유능한 모습을 보인 때가 바로 이 순간이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라’ 시위를 제안했다. 경찰은 또 지난 어버이날 자식들의 영정을 들고 KBS 앞으로 온 유가족들을 막았다. 지난 17, 18일 집회에서도 100명 넘게 연행됐다. 나도 경찰이 터준 길을 따라 동화면세점 앞으로 내려갔다가 여경 4명에게 잡혀 팔을 꺾여 붙들려갔다. 유치장 안에서 경찰이 유가족들을 미행했다는 뉴스를 봤다. 속옷 탈의 사건이나 경찰관의 욕설 사건도 벌어졌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든 면이 다 드러났다고 본다.

최고은 = 나름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고 생각했는데 추모집회에 참여한 대학생 연행 소식 등은 거의 몰랐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단편적인 소식만 접한다.

최훈민 = 아직까지 여러모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원 구조’ 소식을 들었을 때 의심 먼저 들었다. ‘몇 명 구조’라고 보도가 나오면 모를까, 몇 명이 전원인지 그렇게 빨리 파악됐을까. 하지만 사고가 아침에 비교적 육지에서 가까운 곳에서 발생했다. 배도 보였다. 당연히 대부분 구조될 줄 알았는데 점점 배가 가라앉고 승객들이 죽어가는 모습만 생중계로 봤다. “대기하세요”라는 말만 하고 뚝 끊어버린 항해사와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VTS) 통화 내용 등이 공개되면서 더 충격적이었고 어이가 없었다.

고준우 = 사고도 사고지만 대응 과정에서 국가가 보여준 모습에 실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장은 살인과도 같은 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대국민담화에서 해경을 해체하고 공무원, 관피아 등을 처벌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책임자가 아니라 심판자의 위치로 올라선 느낌이다. 반면 지난 어버이날 유가족들이 청와대로 상경했는데 버스와 경찰병력을 세 겹으로 둘러쳐 막았다. 가족을 잃은 큰 슬픔을 겪은 사람들을 찬 바닥에 앉혀놓았던 이날 청와대에서 민생 이야기가 나왔다. 저기 바닥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민생이 아닌가. 최근에는 세월호 관련 사연들이 미담으로만 소모되는 점이 불편하다.

- 수학여행 금지가 사고 초기 대안으로 제시됐다.

우숭민 = 책임 회피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여행에서 사고가 났으니 수학여행을 폐지한다는 발상은 교통사고가 나면 차를 없앤다는 것과 같다. 세월호 승객 가운데는 이사 가던 사람도 있고 가족 단위 여행 가던 사람도 있는데 그럼 가족여행도 금지시켜야 하나? 이분들의 죽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노후 선박, 과적 등의 문제를 보면 세월호 사고는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국가가 “내 잘못 아니다”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국가안전처 신설, 해경 해체를 하면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최고은 = 우리 학교 친구들도 ‘학교폭력 없애게 아예 학교를 없애지?’라고 비웃는다. 사고 때문에 수학여행 찬반 투표를 벌였는데 학부모들은 반대가 많았지만 학생들은 찬성이 많았다. ‘옛날에는 여행이 흔치 않은 기회라 수학여행이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모두 잘사는 시대에도 수학여행이 필요한가’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 입장은 다르다. 여럿이 여행 간다는 의미도 있고. 한 친구는 “1학기는 동아리 면접과 수학여행만 보고 살았는데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라며 한숨 쉬기도 한다.

최훈민 = ‘수학여행의 역할이 무의미해졌다. 교육적 효과도 없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둬놓고 하는 활동 중에 교육적 효과가 있는 것이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다. 학생들이 수학여행 폐지 정책에 짜증내는 이유는 입시 위주 교육정책에서 수학여행이 유일한 숨통이 트일 기회이기 때문이다.

고준우 = 수학여행 폐지나 해경 해체나 논리구조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여행에도 위험 요소가 산재해 있기는 하지만 위험 요소는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구조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이윤을 생명보다 우선시하는 구조다. 그런 구조를 건드려야 정부 정책이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데, 지금은 국가가 진정성 있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를 말한다]“노란 리본만 봐도 울컥하는데… 어른들은 공부만 바라”

▲ 우숭민 안산 경안고학생회장
친구 잃은 충격·아픔 애도·추모로 나타내면
“정치 관심 가지지 말라” 곱잖은 시선 받아

▲ 최고은 서울 세화여고·청소년의회 기자단
학교서 “왜요?”라고 물으면 선생님께 혼나
남들이 싫어할까봐 수업 중엔 질문도 참아

▲ 최훈민 탈학교 활동가
학교선 “나대지 마라” 사회선 “공부나 해라”
10대 선거권 배제로 사회참여 못하게 막아

▲ 고준우 고려대 사회학과
세월호 관련 사연들 최근 들어서는
미담으로만 소비되는 점이 불편

▲ 용혜인 경희대 정외과·‘가만히 있으라’ 시위 제안자
사고 반복되지 않도록 생명과 이윤을 저울지하지 않도록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


- 세월호 사고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용혜인 =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청해진해운은 연간 광고비로는 2억원 넘게 집행하면서 안전교육에는 50만원만 썼다. 법적인 규제를 풀어 20년 이상 된 노후 선박이 다닐 수 있도록 해줬다. 사고 전까지는 이러한 행위들이 비용을 절감시킨 유능한 행위로 여겨졌다. 사고는 세월호가 아니라도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다. 마우나오션리조트도 허가를 받지 않고 대학생들을 받아 운영했다 사고가 났다.

최고은 = 선장이 사고 순간 옳은 방송과 판단을 했다면 이 같은 참사가 없었을 것이다. 배 안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선장이 유일하게 믿을 사람이었는데 발등을 찍힌 것이다.

최훈민 = 선장의 도덕성이나 비정규직 문제도 언급되지만 근본적 문제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특유의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문화라고 본다. 화물을 더 많이 실어도,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이상해도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괜히 낙인찍히거나 ‘왜 나대느냐’는 비난이 돌아온다. 특히 학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선생님에게 한마디 했다가 징계를 받거나 귀를 잡혀 교무실에 가는 경험을 해왔다. ‘좋은 게 좋은 것’ ‘의문 갖지 못하게 하는 문화’와 가장 직접적이고 근본적으로 연관 있는 것은 학교다. 학교를 바꿔야 한다.

최고은 = 그러고보니 학교에서 무슨 지시를 들었는데 “왜요?”라고 엉겁결에 물어봤다가 엄청 혼난 적이 있다. 속으로만 생각했어야 하는데. 학생들 중에서도 질문하는 분위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다. 누군가 질문하면 ‘나 수업 내용 적어야 하는데 왜 흐름을 깨는 거야’라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다.

최훈민 =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가만히 있으라는 곳 아닌가. “왜요?”라는 물음 자체만으로 혼난다. 단순한 이유로, 한두 마디 했다는 이유로 학생을 패는 학교가 많이 있다. 그런 것들로 해서 질문할 수 없는 것이다. 질문할 수 없도록, 입시교육에만 매달리도록 만드는 곳이다. 해경 말고 해체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오히려 학교와 이 같은 제도이다. 침몰 원인이 여러 가지 꼽힌다. 과적, 무리한 개조 등등.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전 선원들이 충분히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 청소년이기 때문에 애도와 추모에 제약이 있는 것인가.

우숭민 = 안산의 학교에서조차 ‘가만히 있으라’는 요구가 있다. 대놓고 학생들의 행동을 막거나 반대하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가만히 있기를 원한다. 집회할 때도 응원해주시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하지만 ‘너희들이 정치에 휩쓸릴까봐 걱정된다’ ‘너희들은 아직 어리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안산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추진하는 진상규명 서명운동에 학교 차원에서 동참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또 색깔론 비슷한 지적이 이어졌다. ‘너희 고3인데 대학은 가야지’라는 말도 나왔다. 9일 안산 문화광장에서 연 고교생 추모집회의 경우도, 부탁드린 적이 없는데 교사들과 학부모 자원봉사단체가 “걱정된다”며 나오셨다.

최고은 = 친구들과 추모 동영상을 만들면서 노란 리본을 달고 있으니까 이 리본이 정치색을 띤다면서 달지 말라고 하신 선생님도 있고, 이건 하나의 위로고 추모의 의미라면서 격려해주신 선생님도 있었다. 그저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행위 자체가 남들의 눈에 띄는 행위이기 때문에 안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최훈민 = 걱정되는 것이 이해된다. 어떤 행동을 하면 한국 사회는 이에 대한 폭력과 억압이 있기 때문이다.

고준우 = 해방 이후 사회적으로 목소리 내는 청년층의 연령이 계속 올라갔다. 세월호 보도에서도 그랬지만 ‘우리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남발된다.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학생들의 사고와 행동을 이 틀에 가두려 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사안에서 주체가 아니라 객체다.

최훈민 = 10대를 배제하는 것은 선거권 및 피선거권 연령 제한으로 제도화됐다고 생각한다. 10대 선거권을 주장하는 1618운동을 제안한 이유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선거연령 제한은 이해할 수 없다. ‘청소년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져선 안된다. 우리들이 대신 지켜줄 테니 관심 갖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요구가 제도화된 것이다. 그런데 정치란 것이 특별한 게 아니다. 지금 내가 책상에 앉아 있도록 만드는 입시제도, 내가 사는 집, 지역이나 가족에 대한 문제까지 생각해보면 청소년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정치인데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최고은 = 실제로 학생들이 정치와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면 선생님들은 “너희는 고교생이고 아직 투표권도 없다.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않은 시기이니 정치 얘기를 꺼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최훈민 = 학교에서부터 정치는 더러운 것이고, 관심 가지면 이상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지금 우리는 특정 정당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꺼리지만 외국 사례를 보면 어릴 적부터 정당에 가입해 토론도 하고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화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문화가 오히려 처벌 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도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우숭민 = 동감한다. 또래들만 봐도 그렇다. 고교생 세월호 추모집회의 슬로건을 ‘학생들이여 울분을 뱉어라’라고 정했는데, 여기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한 학생도 많았다. 촛불추모집회를 하자고 했을 때 ‘집회’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 ‘문화제’라고 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히면 못하도록 만들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어떤 방송사 기자는 ‘누가 시킨 것이냐’는 뉘앙스의 질문을 계속하더라. “우리는 학생들이고, 정치적 색깔이 없고 순수하게 추모하기 위해서 집회를 여는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씁쓸했다. 사회참여 하면서도 나는 순수하다고 강조해야 하다니…. ‘순수유가족’ 발언도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실제 이분들 만나뵈면 그저 눈물부터 쏟아지는데…. 유가족에게 색깔론을 씌우는 사람들에게 일단 유가족을 만나보라고 하고 싶다.

-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최훈민 =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이 드러난 계기라 생각한다. 단순히 표면적 문제 해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학교 혹은 교육의 근본적이고 제도적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 학교에서부터 가만히 있지 않고 토론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학교가 아닌 다양한 선택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 지난해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의 경우 군사문화에 대한 반성 없이 ‘청소년 수련시설 인증제’라는 미봉책으로 사건을 덮은 뒤 넘어가려 했고 결국 별 대책도 없이 1년이 지나갔다. 이런 무책임한 대응이 반복된다면 사회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숭민 =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전히 실종자들은 남아 있고 유가족과 생존자들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는데 “해결됐다”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은 잊혀진다는 의미다. 더구나 곧 월드컵이 열린다. 태안 캠프 참사 유가족들도 잊고 있었다가 지난 10일 안산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나오신 걸 보고 여태껏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언론의 역할을 주문한다. 국민들이 현장에 직접 찾아가서 아는 방법도 있지만 사회적 약자의 요구를 알리는 것이 언론의 책임이다.

최고은 = 참사를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학생의 심정으로 지금 살아가는 이유에 의문이 들었다. 공부하고 대학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쳐도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까. 예전 민주화운동 때에는 초등학생도 거리에 나갔다는데 고교생인 내가 눈앞의 기말고사에만 관심을 가져도 될까. 학생들도 다양한 활동과 교육을 통해 이 사건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한다.

고준우 = 세월호 희생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따랐을 뿐인데 엄청난 불이익을 받고 삶을 빼앗겼다. 학교도 그런 공간의 하나였고, 장애인 생활보조인 권리를 주장하던 송국현씨, ‘노조 만들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요구를 거절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들도 그렇다. “가만히 있으면 경제도 좋아지고 다같이 잘살 수 있는데, 너희들이 설치니까 나라가 어지러운 것”이라는 주장 앞에 희생된 약자들의 삶을 떠올렸다. 자신의 요구를 말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퍼져나가야 한다. 사회의 모든 공간에서, 나부터 변해야 한다.

용혜인 =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만 했다. 이 때문에 최근 1년 반가량 휴학했다 복학하면서 세월호 사건을 맞았다. 사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도 어떻게 진행됐는지 떨려서 기억도 안 난다. 이 사건은 내 삶의 방식이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어버이날에 유가족들이 무릎 꿇고 비는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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