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화재 대응 매뉴얼도 없었다

최희진 기자

장성 병원서 한밤에 불

6분 새 무려 21명 사망

80대 입원환자가 방화

28일 0시27분쯤 전남 장성군 삼계면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에서 80대 입원 환자가 불을 질러 21명이 숨졌다. 자정 무렵 방화로 일어난 돌발성 사고였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2.4㎞ 떨어져 있던 소방대 대원들이 급히 달려와 불을 완전히 끈 6분 사이 치매나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환자들은 침대에 누워 유독가스를 마시고 세상을 등졌다.

2010년 경북 포항 인덕요양센터에서 10명이 숨지는 화재 사고가 났다. 그 후 정부의 각종 대책이 뒤따랐지만 4년 만에 ‘판박이’식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불이 난 요양병원에 필요한 화재 매뉴얼은 만들고 있었다는 게 복지당국의 실토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전국에 우후죽순 급증하고 있지만, 요양병원은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지난 4월 말 현재 요양병원이 1284개로 2008년 말(690개)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고 밝혔다. 해마다 100개 정도 생기고 있는 것이다. 요양병원의 병상 수도 이 기간 7만6556개에서 20만1605개로 2.6배 정도 증가했다. 고령·치매 인구가 늘면서 요양병원을 ‘돈 되는 사업’으로 보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양병원의 안전은 바닥 수준이다. 심평원의 ‘요양병원 입원 진료 적정성 평가’를 보면 2012년 3월 기준으로 937개 요양병원 중에 69.7%만 응급 호출벨을 모든 병상·욕실·화장실에 두고 있다. 36곳(3.8%)은 병상·욕실·화장실 바닥의 턱을 제거하지 않거나 안전 손잡이를 설치하지 않았다.

환자들이 도움 없이 대피하기 힘든 노인들인데도 의료인 기준은 일반 병원보다 느슨하다. 일반병원은 연평균 1일 입원환자 20명마다 의사 1명, 간호사는 환자 2.5명마다 1명을 두도록 돼 있지만, 요양병원 의사는 환자 40명당 1명, 간호사는 환자 6명당 1명을 두면 된다.

요양병원은 야간 당직 시 환자 200명당 의사 1명, 간호사 2명 배치가 원칙이지만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다. 장성의 요양원도 필요한 간호사는 24명이었지만, 16명만 일하고 있었다.

중앙부처 차원에서 마련한 의료기관용 재난 대응 매뉴얼도 아직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6월 중으로 의료기관 재난 발생 시 환자 이송이나 시설 복구 등에 관한 표준 매뉴얼을 만들어 의료기관에 배포할 계획이었다”며 “매뉴얼을 준비하던 중 이번 화재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간 침대용 엘리베이터 등 시설 기준이나 환자 격리·포박 등의 인권 기준에 대한 지침과 점검은 이뤄졌지만, 종합적인 화재 대응체계는 없었던 셈이다. 현행 의료법에 의료기관은 원장이 환자 안전 의무를 지고 시설물의 자체 소방계획을 갖고 있고, 안전 관리는 시·도지사가 하도록 돼 있다.

전문가들은 장성의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과 같이 의료법 적용을 받는 요양병원과 달리 의료기관이 아닌 요양시설은 시설·안전 기준이 더 열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정부가 요양시설 평가를 실시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시설에 대해 허위 서류를 만들어 정부 단속을 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당장 정부가 관리 감독 인력부터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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