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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독무 공연 ‘데쉬’ 앞둔 무용가 아크람 칸 “혼자 춤추는 건 언제나 두렵다”

  • 문학수 기자

“혼자 춤추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검은 피부의 키 작은 무용가 아크람 칸(40)은 2000년 이후 본거지인 영국을 넘어 세계적 명성을 쌓아왔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의 안무를 맡기도 했다. 그런 경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예술 작업 앞에서 노상 긴장과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내가 듀엣 무대가 유난히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혼자 춤추는 게 두려워 누군가와 같이한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에서 공연하는 <데쉬(Desh)>(14·15일 LG아트센터)는 80분간 나 혼자 춤 춘다.”

영국에서 방글라데시 이민 2세로 태어난 그는 <데쉬>는 “나와 내 부모님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전에 입국한 그를 인터뷰했다.

아크람 칸은 (2007년), (2009년), (2011년)에 이어 네 번째 한국 무대에 선다. | 강윤중 기자

아크람 칸은 <신성한 괴물들>(2007년), (2009년), <버티컬 로드>(2011년)에 이어 네 번째 한국 무대에 선다. | 강윤중 기자

- 당신은 인도 전통 무용 ‘카탁’을 현대 무용에 접목해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카탁을 언제, 어떻게 접했나?

“어머니도 무용가를 꿈꿨는데 학자였던 외할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셨다. 어머니 말로는 내가 아주 부산스러운 아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TV에서 마이클 잭슨 춤이 나오면 꼼짝 않고 지켜봤다고 한다. 세 살 무렵에 어머니가 방글라데시 전통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곱 살 때 카탁을 가르치는 교습소에 처음 데리고 가셨다. 그렇게 시작됐다.”

- 카탁 실력 덕분에 당신은 14살에 영국 연출가 피터 브룩의 <마하바라타> 무대에 섰다. 그 거장과의 만남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그분을 만난 건 신이 내린 축복이었다. 내 삶을 결정한 계기였다. 그는 연극의 개념과 방식을 바꾼 혁명가다. 음악가 스트라빈스키, 무용가 피나 바우쉬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그는 인도어와 일본어, 아프리카 언어를 쓰는 다국적 배우들과 연극을 만들어냈다. 내가 참여했던 <마하바라타>는 그의 최고 걸작이다.”

- <데쉬>는 ‘방글라데시의 탄생과 역사,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아낸 헌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 방글라데시 독립 40주년에 맞춰 만든 작품이다. ‘데쉬’는 벵골어로 ‘고국’이라는 뜻이다. 나는 런던 윔블던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열 살 때까지 집에서 영어를 쓰지 않으셨다. 열 살이 되던 생일에 나는 어머니 입에서 영어를 처음 들었다. ‘해피 버스데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모국은 언제나 방글라데시였다. <데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바로 ‘정체성의 문제’다. 그 다음 주제는 내 세대와 아버지 세대의 갈등이다. <데쉬>는 정치적 작품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에 우르드어를 강요했지만, 내 아버지 세대는 정치적 지배는 용납해도 벵골어를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며 싸웠다.”

- 영국에서 이민 2세로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

“런던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의 도시다. 나는 그 속에서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왜 불편함이 없었겠는가. 예전에는 ‘블랙이 싫다’고 드러내놓고 말했지만 이제는 그걸 숨긴다. 겉으로 표현하면 비난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더 위험하다. 정체성은 계속 변화한다. 어디에, 누구와 함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윔블던의 놀이터에서 나는 스스로를 영국인으로 생각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갈색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3년 전 <데쉬>를 만들기 위해 방글라데시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은 나를 영국인으로 바라봤다. 1년 전에 아빠가 됐다. 아내는 일본인이다. 이 두 사람도 내 정체성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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