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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질 ‘탕탕탕’ 세 번 안에 못하면 ‘나오지 마’ 소리 들어”

속도전 내몰린 노동자들… “숱한 죽음·부상…현장은 전쟁터”

“건설현장은 전쟁터입니다. 일하는 것이나 사람이 죽어가는 것이나요.”

지난 17일 경기 안산에서 만난 노동자 연종우씨(55·가명)는 25년간 몸담은 일터를 주저없이 ‘전쟁터’라 불렀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그는 일터에서 숱한 죽음과 부상을 목격했다. 2012년 인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도 현장에 있었다.

“주경기장 옆에 선수촌 타워가 두 대 올라가는데 갑자기 타워 한 대에서 ‘쿵’ 소리가 났습니다. 2t가량 자재를 싣고 올라가던 크레인 줄이 끊어진 거죠. 밑에 신호하던 사람이 깔려 즉사했어요.”

발판 설치 안돼 ‘아찔한 작업’ 건설현장에서는 안전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곤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2만3600명이 업무상 질병·재해로 다쳤고 567명이 숨졌다. 지난 1월 경기 안산시의 한 건축현장에서 노동자가 발판 없이 난간에 매달려 작업을 하고 있다. | 전국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 제공

발판 설치 안돼 ‘아찔한 작업’ 건설현장에서는 안전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곤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2만3600명이 업무상 질병·재해로 다쳤고 567명이 숨졌다. 지난 1월 경기 안산시의 한 건축현장에서 노동자가 발판 없이 난간에 매달려 작업을 하고 있다. | 전국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 제공

공사는 즉각 중단됐다. 이튿날 뉴스는 “아시안게임 공사장 사고로 ‘인부’ 1명이 숨졌다”고 짤막하게 소식을 전했다. 경찰이 건설사의 과실 여부를 수사한다는 내용이 언급됐지만 경기장을 빨리 지어야 한다는 이유로 공사는 1주일 만에 재개됐다. 연씨는 “건설노동자의 죽음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씨는 “건설 일은 ‘일맥’과 ‘인맥’으로 정해진다”고 말했다. ‘오야지’로 불리는 팀장이 건설사와 사업주로부터 일감을 따내 자신과 알고 지내는 노동자들에게 배분한다. 작업은 통상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고, 점심시간 외 오전·오후 1차례씩 휴식시간이 있다. 휴식도 간식으로 나온 빵을 먹고 담배 한 대 피우면 끝이다.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안전모는 지급되지만 쓰라고 강조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현장의 부실한 안전장치를 문제 삼을 엄두도 낼 수 없다. ‘인맥’이 끊기면 ‘일맥’이 끊기기 때문에 시키는 일만 군말 없이 따른다.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다. 연씨는 “하도급 체제에서 팀장은 공사를 빨리 끝내면 성과급을 받는다”며 “노동자들은 이 때문에 속도전에 내몰린다”고 지적했다. “못을 박을 때는 망치질을 무조건 탕탕탕 3번 안에 해야 합니다. 탕탕탕탕탕 5번에 걸쳐 하면 다음에는 ‘나오지 마’라고 합니다. 이게 전쟁이 아니고 뭡니까.”

[우리 안의 세월호 - 안전 불감 건설현장]“못질 ‘탕탕탕’ 세 번 안에 못하면 ‘나오지 마’ 소리 들어”

연씨는 지난 5월 어깨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무게 40~50㎏에 달하는 자재를 나르는 작업을 반복하다 얻은 ‘직업병’이다. 수술을 받고 지금은 일을 쉬고 있다. 어깨 부상과 별도로 25년간 망치질을 해 온 오른팔은 언제부터인가 ㄴ자로 굽어 똑바로 펴지지 않는다. 그에게 일터는 ‘진짜 전쟁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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