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함석·디스켓… 퇴물들에 깃든 추억과 기억

서영찬 기자

▲ 사물의 이력…김상규 지음 | 지식너머 | 304쪽 | 1만3000원

[책과 삶]함석·디스켓… 퇴물들에 깃든 추억과 기억

쓰레받기, 물뿌리개, 양동이, 지붕 등의 소재로 한때 주가를 올렸던 함석은 이제 퇴물로 취급받는다. 중년 남자라면 학창시절 기술 수업시간에 함석을 자르고 두드려 쓰레받기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함석이 언제부터인가 플라스틱에 밀려났다. 함석의 장점은 소비자가 손수 만들어 쓰기 쉽다는 점이다. 따라서 함석이 플라스틱으로 대체되는 과정은 ‘만들어 쓰기 문화’의 퇴조와 맞물려있다. 편리함과 효율성을 좇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느덧 일상용품을 만들어 쓰는 재미와 능력을 잃어버렸다.

가구를 주로 디자인하고 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저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물 30여종을 통해 세태를 들여다본다.

편리함을 좇다보니 우리는 사물의 물성에 점차 무뎌진다. 스마트폰 자판을 누르는 손끝은 타자기를 두드릴 때만큼 물성을 느끼지 못한다. 손가락 사용횟수는 늘고 사용 패턴은 단순화됐지만 손끝에 닿는 사물의 질감은 획일적으로 바뀌었다. 최신 제품을 손에 넣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 물건을 오래 쓰는 일보다 더 중요해진 시대에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감각만이 아니다. 필름 카메라로 찍을 때의 신중함이 디카, 폰카에는 없다.

교통카드도 따지고보면 지불 행위의 신중함을 앗아간 사물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내니 결국 소비 감각은 무뎌진다. 저자는 필름 카메라처럼 구닥다리가 된 물건들 속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컴퓨터에 넣었다 뺐다 하던 저장장치 디스켓도 이제 퇴물이 됐다. 하지만 디스켓은 쓸모는 없어졌어도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컴퓨터 화면이나 산업 현장에서 저장공간을 의미하는 아이콘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실물은 사라졌어도 이미지는 살아있는 경우다.

사물은 기능이라는 측면 이외에 사용자의 추억과 기억도 담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 제품들은 이런 추억과 기억이 머물 틈을 주지 않는다. 지하철의 라도 시계나 낡은 아날로그 간판은 디지털 제품보다 정보량은 적을지 몰라도 사람마다 그에 관한 추억 하나쯤은 지니고 있다. 사물에 깃든 추억도 물성이라면 물성이다.

저자는 자동으로 천천히 문을 닫게 하는 도어체크가 무연사회, 독거사회를 정착시킨 장본인이라고 여긴다. 아파트처럼 서로 문을 꼭꼭 닫고 생활하는 문화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이웃이 아무 때나 들여다보고 왕래하던 풍경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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