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파괴라는 주제 걸맞게 불의 미학에 기댄 역동성 돋보여
“긍정적 전시” “작품수준 편차 커” 미술계 전문가들 평가는 엇갈려
2014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은 먼저 전시관 광장에 놓인 2개의 컨테이너를 만난다. 컨테이너 뒤로는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비엔날레 주제를 상징하듯 거대한 문어가 불타는 건물을 뚫고 나오고, 옆에는 큰 스토브에 장작이 타면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각각 제레미 델러, 스털링 루비의 작품이다.
깔끔한 전시관 건물, 유명 작가의 작품을 배경으로 놓인 컨테이너가 영 생뚱맞다. ‘도대체 왜, 여기에 있을까’란 호기심을 가질 만하다. 그냥 지나치는 관객들이 많지만, 창문으로 속을 들여다보면 깜짝 놀란다. 많은 유골 때문이다. 고이 모셔져야 할 유골이 공사장에나 있을 법한 낡은 컨테이너에, 허술하게 놓이다니.
이 의문들은 제1전시실 안쪽에 자리한 임민욱 작가의 퍼포먼스 작품 ‘내비게이션 아이디’에서 풀린다. 유골 컨테이너는 한국전쟁 당시 자행된 국가의 조직적 민간인 학살인 ‘보도연맹 학살’ 희생자들로, 정부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이 중단되면서 경북 경산, 경남 진주의 현장에 있던 것이다. 임 작가는 학살 피해자 유족들과 협의해 방치된 유골 컨테이너를 전시관으로 가져왔고, 5·18 희생자 어머니들인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이 환대로 이들을 맞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부조리한 국가권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숱한데 진상 규명은 60여년이 지나도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진정한 인간성 회복과 상처의 치유·화해는 진상규명에 있음을 말하는 작품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임 작가는 “이런 엄청난 일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또 얼마나 엄청난 일이냐”고 물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전경. 왼쪽 위에는 작가 제레미 델러의 작품, 광장에는 작가 임민욱의 ‘내비게이션 아이디’의 유골 컨테이너가 놓여 있다.
에드워드 키헨홀츠와 낸시 레딘 키엔홀츠의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을 맞은 올해 비엔날레에는 모두 38개국의 작가 111명(103팀)이 참여했다. 지난 3일 개막해 11월9일까지 비엔날레 전시관 5개 전시실과 인근 중외공원의 팔각정, 민속박물관 등에서 모두 413점이 선보이고 있다. 올해 특징은 창조적 파괴를 위해 각종 관념이나 체제·규범·제도 등 기존의 터전을 불태운다는 주제에 맞게 정치·사회적 맥락의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부조리한 권력의 억압이나 소비지상주의, 여성을 비롯한 소외계층에 대한 핍박 등을 비판하고 이에 저항한다. 에드워드 키헨홀츠와 낸시 레딘 키엔홀츠의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는 대통령·장군 등을 형상화한 조각들의 퍼레이드를 통해 국가권력, 지도자를 비판한다. 이들은 전시가 열리는 나라에서 실시한 ‘당신은 정부에 만족하느냐’는 설문조사 결과를 작품 속 대통령이 쓴 마스크에 ‘Yes’나 ‘No’로 표시한다.
이불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의 작품을 통해 여성에 대한 억압·편견을 적나라게 드러낸다.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윤석남의 무용가 최승희에 대한 오마주인 설치 ‘최승희’(1996)도 나왔다. 겅지안이(중국)는 쓸모없어진 용품들을 모은 설치 ‘쓸모없는’으로 물질·소비 중심 문화를 지적하며, 황재형의 1980년대 작품 ‘삽’ ‘낙오자’ 등은 노동자의 삶과 노동의 가치를 주목한다. 에두아르도 바수알도(아르헨티나)는 실제 타고 남은 잔해로 집을 만든 ‘섬’으로 관람객에게 독특한 체험을 선사하며, 우르스 피셔는 전시장에 아예 자신의 뉴욕 아파트를 실제처럼 정교하게 설치했고, 그가 만든 집 안에는 조지 콘도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불이 지닌 미학에 기대어 퍼포먼스·사운드 등 역동적 면이 강화됐고, 작가의 90%가 비엔날레에 처음 참여하는 작가라는 점도 특징이다. 아시아와 남미 등 3세계 작가들도 많은 편이다. 제시카 모건 총감독은 “특히 신작들이 주목할 만큼 좋다”고 평가했다. 그는 ‘추천작 10선’으로 임민욱의 ‘내비게이션 아이디’, 우르스 피셔의 ‘38E.1st’, 겅지안이의 ‘쓸모없는’, 퍼포먼스인 알로라·칼사디아의 ‘음계(기질)와 늑대’, 정금형의 ‘심폐소생술 연습’, 스튜어트우의 ‘보안창틀’, 이불의 ‘수난유감’, 나우푸스 라미레스 피구에로아의 ‘에렌디라를 위한 소품’, 에이에이 브론슨과 작가들의 협업작업, 킨홀츠 부부의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를 꼽았다.
전시를 둘러본 미술계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기존 국제비엔날레나 국내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했으며 세대를 초월한 작품이 균형을 이룬 점은 긍정적 측면으로 꼽혔다. 한 중견 큐레이터는 “진정한 주제는 ‘터전을 불태우라’보다 사회 속에서 미술이 해온 역할, 그 역할의 변천사로 읽혀졌다”며 “긍정적 전시로 평가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작품 수준이 너무 들쑥날쑥하고 너무 많은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다보니 작가당 작품수가 적어 작가의 작품세계나 발언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 비엔날레 특유의 관객을 흥분시키고 확 휘어잡는 맛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한 중견 평론가는 “지나치게 주제를 의식한 듯한 수준 낮은 작품들이 많이 거슬렸다”며 “불꽃과 연기를 소재로 한 벽지를 전체 전시장에 적용한 것도 특이하긴 했지만 오히려 관람에 방해요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