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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용기

입력 2014.09.14 20:40

수정 2014.09.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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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이 최다관객, 최대흥행을 기록하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명량>은 스펙터클한 전투장면과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버무려진 영화입니다. CG를 활용한 전투신도 볼만하지만 장군이 던진 한마디, 한마디가 국민들의 가슴에 와 닿은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아침을 열며]두려움과 용기

장군이 남긴 많은 말들 중에서 저는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두려움은 인류가 이 땅에서 삶을 꾸려온 이후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도 가득합니다. 물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훨씬 일상적이고 은밀합니다. 바로 생존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50여일이 흘렀습니다. 참사가 일어났을 때만해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세월호에 붙잡혀 있을 줄 몰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이 확실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약속은 어떻게 됐습니까. 다시는 자식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진실을 알려달라는 유가족들의 기본적인 요구마저 묵살되고 있습니다. 뿐입니까. 단식농성장에서는 짐승 같은 인간들이 ‘폭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손주까지 있을 할아버지들은 유가족을 향해 “죽어라”라는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지난 150여일간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그동안 이 땅에는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두 가지만 존재했습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유가족과 국민들의 진상규명 요구요, 변한 것은 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약속입니다. 그럼 그들은 왜 이렇게 이성을 잃은 파쇼 같은 행태를 보이는 걸까요. 혹시 그들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들 뇌리에 또아리 틀고 있는 두려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560명을 뽑는 순경공채에 6만여명이 몰리고, 대학생들은 취업전선에 내몰리고, 청소년들은 수능에, 직장인들은 월급에 목숨을 거는 이 시시포스와 같은 칼날 위의 삶 말입니다. 이 두려움이 기껏해야 리본 달고 조문하고 서명이나 하는 소극적인 저항만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 값비싼 도자기를 깬 형보다 그것을 제대로 꿰맞추지 못하는 동생을 향해 더 많은 비난과 채찍을 휘두르는 건 아닐까요. 약자를 향한 비겁한 폭력 말입니다.

지난주 추석에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서도 서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곁을 지나며 ‘서명을 받으면 뭘 해’라는 못된 생각을 했습니다. 500만여명의 서명에도, 목숨을 건 45일간의 단식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게 그들입니다. 유가족들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먹고살기 바쁜 우리들이 촛불을 다시 켜고 거대한 물결을 이뤄 청와대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존의 두려움에서 한발짝 벗어나 농성장을 찾고, 토·일요일 집회에 참석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촛불을 다시 피워내는 용기를 가진다면 그래도 그들이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이 말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화두입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박 대통령에게도 필요합니다. 지금 세월호 정국을 풀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은 박 대통령입니다. 그에게 쏟아지는 평가절하는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게다가 진상규명을 꺼리는 이유가 4·16 그날의 ‘사라진 7시간’ 때문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그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을 외면한 채 규제개혁을 외치고, 자갈치시장을 찾고, 사진까지 곁들인 한가한 추석 안부를 전한다 해도 그 의혹은 쉽게 묻히지 않을 겁니다. 물론 대통령으로서는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마저 떨쳐내는 것이 국민에 대한 무한봉사를 선서했던 대통령이라는 공직자가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요.

사실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가장 마음에 두었던 대사는 “이 쌓인 원한들, 어찌할꼬”였습니다. 만약 이대로 진실이 덮여 버린다면 세월호 창문을 긁으며 서로 부둥켜 안고 죽어간 어린 넋들의 원한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박 대통령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두려워 마십시오. 용기를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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