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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박대 취업 ‘사’라지는 전공 ‘철’폐되는 학과… 문사철 길을 잃다

입력 2014.10.21 22:41

수정 2014.10.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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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역사·철학 ‘고사 위기’

“제가 국어국문학과 학생으로 졸업할 수 있을까요.” 지난 13일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향하는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이정훈씨(24)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등에 멘 가방에는 <현대시론> <한국의 방언> <한국 명작의 이해> 등 전공 관련서가 들어 있었다.

그는 3주 전 대학 측이 현재 30명인 국문과 정원을 20명대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뒀던 이씨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씨는 “당장 학과가 없어지지 않더라도 정원이 줄면 폐강되는 수업이 늘어나고, 학과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광운대는 2006년 동북아학부를 신설하면서 국문과 정원을 40명에서 30명으로 줄인 바 있다.

‘문’전박대 취업 ‘사’라지는 전공 ‘철’폐되는 학과… 문사철 길을 잃다

올해 상반기 취업준비를 시작한 서울대 국사학과 4학년 박모씨(26)는 서류전형에서만 10번이나 탈락했다. 인류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하고 교지와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던 박씨는 누구보다 대학생활에 자부심이 컸다. 토익 점수도 945점이었다.

박씨는 “기업들은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직원 채용 때는 서류전형 자격을 상경계열로 제한하거나 마케팅 또는 인사업무와 관련된 지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입사 원서에 ‘전공 무관’이라고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게 전공 때문인지, 자기소개서가 문제인지, 인턴 경력이 없어서 그런지, 혹시 교지나 연극동아리 활동 경험이 ‘운동권’으로 비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고 했다.

경기 분당의 한 고교 3학년 강모양(18)은 2015학년도 대학 수시모집에서 간호학과 2곳에 지원했다. 문과에서 줄곧 내신 1등급을 받아온 강양에게 간호학과에 교차지원한 이유를 묻자 “취업 때문”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강양은 “문과는 취업이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문과 학생 30%가량은 교차지원해 대학 간호·보건 계열에 원서를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사·철(文·史·哲, 문학·역사·철학을 이르는 말)’ 중심의 대학 인문계열이 ‘4중고’로 신음하고 있다.

인문계열 졸업생의 낮은 취업률은 학과 통폐합과 정원 축소 등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취업 걱정에 고교생들의 문과 기피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강의 축소 등으로 석·박사급 연구자들이 갈 곳을 잃으면서 인문학 연구와 교육 수준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대기업 채용 시장에서 인문계열은 ‘찬밥 신세’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상위 3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0위권 기업의 62%가 인문계열보다 이공계 출신을 더 많이 뽑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문계열의 낮은 취업률은 학과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가 취업률을 주요 지표로 구조조정을 강제한 결과다. 인문계열 학과 통폐합을 시행한 중앙대와 광운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에서도 유사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경대는 2012년 국문과와 철학과를 통합했고, 배재대는 국문과를 한국어문학과로 바꿨다.

기업의 인문계열 채용 기피 현상은 고등학생의 진로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 ㄱ고등학교의 교사 ㄴ씨는 “3~4년 전부터 대학 진학과 취업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져 이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학 인문계열 학과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연구자들은 제대로 된 연구와 교육이 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학과 통폐합을 겪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어문계열 교수 ㄷ씨(48)는 “학과가 없어지면서 연구자들은 강단에 설 기회를 잃고, ‘HK(인문한국) 프로젝트’ 등 정부의 단기적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에 몰려 제대로 된 연구가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윤지관 한국대학학회 회장(덕성여대 영문과 교수)은 “교육부가 대학 본연의 기능과 비전에 대한 고려 없이 구조조정을 진행해 ‘인문학 인프라’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 ‘문과의 눈물’ 기획취재팀

팀장 정제혁(사회부) 기자, 이호준(산업부), 정원식·임아영(문화부), 박은하(사회부), 김지원(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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