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대안은 없나 - 이렇게 바꾸자
1996년과 2006년에 제기된 인문학 위기론의 배경에는 인문계열 교양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과 대학원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인문학의 위기는 더 구체적이고 더 극단적이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까. ‘문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대안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앎과 삶의 학문’인 인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8일 인문학 관련서가 빼곡하게 꽂혀 있는 서울 시내 대학 도서관에서 한 여대생이 책을 읽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1) 대학 평가지표에서 취업률을 빼자
2003년 이후 대학의 전체 학과 수는 16.6% 늘었다. 인문계열 학과들만 1.7% 줄었다. 2011~2013년 통폐합된 인문계열 학과만 43개에 이른다. 주된 원인은 취업률이다. 교육부는 2011년부터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과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을 선정하고 있다. 평가지표 중 배점이 가장 큰 항목은 재학생 충원율이고, 취업률은 그 다음이다. 그러나 재학생 충원율에는 졸업 후 취업 가능성에 대한 재학생들의 평가가 반영된다. 사실상 취업률이 결정적 지표다. 대학들이 인문계열 학과를 구조조정 1순위에 올려놓는 것은 인문계열이 전체 취업률을 끌어내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 교육의 성과를 취업률로 평가할 수는 없다. 취업률을 평가지표에서 빼야 한다”고 말했다.
(2) 긴 안목으로 인문학에 투자하자
취업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기업은 인문계열 전공자들을 홀대한다. 올해 대기업들의 인문계와 이공계 출신 채용 비중은 2 대 8 수준까지 벌어졌다. 인문계열 전공자들에게 아예 응시기회조차 주지 않는 대기업들도 있다. 대기업은 직무 적응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한국 대기업들은 인재를 장기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지 않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재만 뽑으려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 변화를 읽는 능력이나 갈등해결 능력에서는 인문계열 전공자들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근시안적인 채용 관행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이 사회적 투자라는 생각으로 학술연구를 지원할 필요도 있다. 1978년 설립된 대우재단은 200억원을 투자해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포함한 기초학문 분야 연구를 지원했다. 연구 성과 중 일부는 대우학술총서로 나왔다. 대우학술총서는 1983년부터 지금까지 600권 넘게 출간되며 기초학문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3) 문·이과 융합교육을 하자
문과와 이과의 구분은 100여년 전 근대 대학교육 제도의 산물이다. 윤해동 한양대 교수는 “지적으로 불균형한 교육을 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지금처럼 대학 학제 간 벽이 높은 상황에서 인문학만 잘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며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에 관계없이 모든 학부생들을 상대로 문·이과의 경계를 넘어서는 교양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경희대는 2011년부터 교양대학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설치해 학부생들이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등 학제 간 경계를 넘는 교양 과목들을 35학점 이상 의무적으로 수강하도록 하고 있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는 “교육의 패러다임을 대학-고등학교-중학교에 이르기까지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지금 대학의 인문계열 커리큘럼으로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인문계열의 많은 부분을 지식 교육이 아닌 인간교육에 초점을 맞춘 교양 교육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교육연구회 차원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인문계열 학부과정을 ‘학사완결형’ 교육과정과 ‘대학원 연계 전문가 양성 과정’으로 나눠야 한다고 제안했다.
(4) 대학의 공공성을 높이자
학령인구 감소로 2018년부터 대학 입학정원이 고교 졸업생보다 많아진다. 대학 구조개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취업률을 기준으로 퇴출 대학을 선정하는 현행 방식은 기초학문의 고사(姑死), 수도권·지방대 간 격차 확대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 지난 8월 한국대학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한 교수들은 교육의 공공성을 높이는 쪽으로 대학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체 대학의 82%를 차지하는 사립대를 줄이고, 국공립대의 비중을 전체의 절반 가까이로 높이자는 것이다.
박거용 상명대 교수는 “기초학문은 국공립대가, 응용학문은 사립대가 맡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는 “부실·부패 사립대는 공적 지원을 통해 법인과 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영형 대학’으로 바꾸고, 국공립·사립·공영형 사립이 교육 중심, 연구 중심, 직업교육 중심, 평생교육 중심 등으로 특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장기적 구조개혁을 설계하기 위해 (가칭) ‘국가고등교육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앞서 2010년에는 교육부 주도로 60여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위원회에서 (가칭) ‘인문사회진흥기본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5) 인문학자들이 적극 나서자
인문계열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교육부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정부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2012년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을 지내고 최근 경기대로 복귀한 김기봉 교수는 “인문학의 역할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정책 전문가가 있어야 하는데 학계에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며 “그냥 인문학이 중요하다고만 하면 정부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논리를 만들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는 “인문학자들의 역할은 인문학의 유용함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고, 연구자만을 위한 인문학이 아닌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위한 인문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