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는 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나라 때의 ‘삼원연수서(三元延壽書)’를 보면 ‘옛날 굶주린 사람들이 밥 대신 은행을 많이 먹고 다음날 모두 죽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세계2차대전 이후 패망한 일본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은행을 주식으로 먹었다가 많은 중독사고가 있었다.
은행의 종자(은행은 열매가 아님)에는 시안배당체인 아미그달린, 부르니민과 함께 메칠피리독신이 함유돼 있다. 모두 독성물질로 미성숙종자일수록 많다. 독성반응은 날로 먹으면 더욱 심하고 익혀도 독성은 줄어들지만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는다.
은행을 감싸고 있는 외피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여기에도 빌로볼과 소량의 징코톡신(ginkgotoxin; 은행독소)이라는 독성물질이 있다. 빌로볼은 피부자극제로 피부에 수포를 형성, 알레르기성 접촉성피부염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이들은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충제 역할을 한다.
단단한 껍질 안쪽의 얇은 속껍질에는 징코톡신이 다량함유돼 있다. 징코톡신은 열을 가해도 없어지지 않아 반드시 속껍질을 제거하고 먹어야 한다. 징코톡신은 (간질)발작을 일으킨다.
중독증상은 주로 중추신경계의 문제로 복통, 구토, 설사, 경련발작, 체온상승, 호흡곤란, 맥박약화, 동공축소 및 산대, 백혈구 증가 등 다양하다. 소수의 사례에서는 촉각과 통각을 소실시키면서 마비증상을 일으켰다. 심각한 경우 혼미, 의식소실과 쇼크가 오고 사망에 이른다.
임상보고를 보면 36세 여성은 은행 70~80개를 먹고 4시간 후 구토와 발작을 일으켰다. 어느 41세 여성은 60개 정도의 은행을 먹은 후 4시간이 지나 오심, 구토, 어지럼증과 팔다리 떨림이 발생했다. 중독증상이 일어나는 시간은 식후 1시간에서 12시간 정도로 다양하다.
그렇다면 하루 10개의 기준은 어디에 온 것일까. 공교롭게도 미국 의학전문 뉴스사이트인 웹MD(WebMD)에도 ‘하루에 10개 이상의 구운 은행을 먹으면 호흡곤란, 맥박약화, 발작, 의식소실과 쇼크가 올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반면 ‘중약대사전’을 보면 중독증상을 일으키는 은행섭취량은 어린이가 7알에서 150알이고 성인은 40알에서 300알로 개인차가 많은 것으로 임상보고돼 있다. 많은 자료를 검토해 보면 은행의 독성은 개체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어린이의 경우 익힌 것이라도 한번에 30~40알을 복용하면 쉽게 중독된다고 했다.
은행이 들어간 대표적인 처방으로 정천탕(定喘湯)이 있다. 여기에 들어간 은행처방용량은 ‘누렇게 볶은 은행 21개(銀杏炒黃 21枚)’로 돼 있다. 보통 하루 2첩을 복용하기 때문에 42개가 된다. 아이의 경우 성인의 절반이하로 처방한다. 특정체질의 천식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수백년간 사용돼 왔지만 별다른 부작용보고는 없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성인의 경우 익힌 은행을 하루 10개 이하, 어린이는 하루 3개 이하로 기준을 정하고 있다. 하루 10개를 넘는다고 누구에게나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독증상은 나이가 어릴수록, 체력이 약할수록, 복용량이 많을수록 심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행여나 있을 수 있는 은행중독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은행은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하고 처음 먹는 경우 소량부터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은행은 식품이자 약이지만 소수에게는 독성을 띠는 두 얼굴의 아수라백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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