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인터뷰서 테헤란 미 대사관 재개관 가능성 언급
쿠바 이어 관계 정상화 추진 시사… 미 보수파 등 반발
“절대 아니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이란과의 관계 개선 계획을 묻는 질문을 받고 한 대답이다.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성사시킨 오바마가 이란과도 화해를 추진할 뜻을 시사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미국의 최대 앙숙인 이란과의 관계가 풀린다면 오바마는 재임 중 ‘역사적인 치적’을 쌓게 된다.
오바마는 29일 미 공영라디오(NPR) 인터뷰에서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테헤란에 미국 대사관이 다시 열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절대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는다(I never say never)”고 답했다. 그는 미국과 쿠바 관계가 풀리기까지의 과정을 언급하면서, 이란 문제 역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할 사안임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와 동맹국들에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 작은 나라(쿠바)와, 테러지원 전력이 있고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 크고 복잡한 이란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오바마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관심이 없음을 세계에 입증해 보인다면, 제재가 풀리고 이란 경제가 성장해 국제사회에 다시 통합된다면 우리는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7년 대선 캠페인 때부터 불량국가 지도자들과 만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내 대답은 같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만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외교를 믿으며, 대화를 믿으며, 개입을 믿는다”고도 덧붙였다.
여러 조건을 달긴 했지만, 오바마가 한 해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재임 중 이란에 미국 대사관을 다시 열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오바마의 지지율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뒤 크게 뛰어올랐다. 지난 21일 발표된 CNN 조사와 28일 공개된 라스무센 조사에서 오바마 지지율은 48%로 20개월 새 최고를 기록했다. 경제 회복세가 완연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의회전문지 ‘더힐’은 오바마가 미국 내에서 극히 민감한 사안인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런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란과 미국에 나란히 강경보수파가 득세하면서 양측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취임 초부터 계속 이란에 손짓을 했고, 지난해 이란에서 중도온건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란은 미국 등 6개국과 지난해 11월 핵협상에 잠정 합의했다.
오바마의 이너서클 내에는 이란 ‘화해론자’가 많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지냈고 이란 자리프 장관과 친분이 깊은 푸닛 탈와르 국무부 차관보가 대표적이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자리프 장관이 유엔 주재 이란 대사를 지낼 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란에서도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로하니 정권 사이에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하메네이의 측근인 알리 악바르 벨라야티 전 외교장관은 지난달 말 내부 강경파들을 향해 “핵협상은 (하메네이가) 동의한 것이니 더 이상 비난하지 말라”고 못박았다.
문제는 미국 보수파들과 이스라엘의 반발이다. 상·하 양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이란과의 대화를 어떻게 해서든 막을 태세다. 지난달 이란 핵협상이 연장됐을 때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의 핵협상을 타결지음으로써 외교 업적을 거두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역시 미국과 이란의 해빙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독자적으로라도 이란 핵시설을 공습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오바마는 NPR 인터뷰에서 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태도’를 문제삼았는데, 이스라엘과 미국 내 친이스라엘 진영의 반발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