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로마 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알베르토 안젤라 지음·김정하 옮김 | 까치 | 540쪽 | 2만원
![[책과 삶]‘세계의 돈’ 로마 동전의 유통 과정서 마주친 로마인의 생활](https://img.khan.co.kr/news/2015/01/23/l_2015012401003211600266971.jpg)
동서고금 따질 것 없는 불변의 사실. ‘돈은 돌고 돈다.’ 제국시대 로마의 동전도 황궁에서부터 황제의 권력이 미치는 곳까지 돌고 돌았다. 런던, 파리, 스페인 끝자락, 루마니아 삼림지대, 메소포타미아 평원, 이집트와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까지 로마의 동전은 널리 유통됐다. 책은 동전의 여행 경로를 따라 2~3세기 로마 제국 사람들의 삶을 재현한다. 이 시간 여행의 안내자는 세스테르티우스라는 둥근 청동 화폐다.
세스테르티우스는 주로 군대를 통해 유포됐다. 로마는 군사력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정복지를 관리했는데 군대는 돈을 가지고 다니며 유통시켰다. 당시 동전은 통화수단일 뿐만 아니라 황제 등극과 같은 정보를 알리고 황제의 업적을 홍보하는 수단이었기에 군대 발길이 닿는 곳엔 어김없이 동전이 뿌려졌다.
포도 재배는 군대에만 허가됐다. 룩셈부르크·벨기에 접경 트리어는 모젤 와인으로 유명한데, 로마군이 주둔하면서 포도 생산지로 각광을 받았다. 오늘날 유럽 와인 주산지와 로마군 주둔지가 겹치는 이유도 그런 연유가 있다. 가룸 소스는 로마 시대 호화 만찬에 필수 재료였다. 참치 살과 내장을 소금에 절여 만든 가룸 소스는 스페인 해안지역에서 만들어졌다. 가룸 소스가 로마 궁정 식탁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로마의 동전이 스페인의 가데스까지 여행했기에 가능했다.
1800년 전 로마는 현대 유럽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밀라노 귀족 여성들이 중국산 비단옷을 걸치고 거리를 활보했다는 사실을 통해 ‘패션 도시’ 밀라노의 원형을 발견한다. 또 현대의 고속도로에 비견되는 로마 가도 곳곳에는 휴게소에 해당하는 무타티오, 모텔과 유사한 만시오가 있었다. 지중해 해안가에 호화 별장이 즐비한 것도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저자는 세스테르티우스가 발굴된 지역의 고고학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여 이야기체로 로마 시대의 풍경을 묘사한다. 노예 무역, 대전차 경기 관람 풍경, 외과 수술 장면, 부자들의 기부행위 등이 소설처럼 그려진다.
세스테르티우스는 어디까지 여행했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로마의 금화, 은화가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메콩강 삼각주에서도 발굴됐다고 하니 세스테르티우스도 제국 영토 너머로까지 여행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