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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의 꿈

입력 2015.02.03 16:49

수정 2015.02.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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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책으로 뜨는 게 꿈이었다. 서른 살 무렵부터 유치하기 짝이 없는 책을 주기적으로 냈던 것도 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는데, 문제는 유치해도 너무 유치했다는 데 있었다. 책이 안 팔린 건 당연한 일이었고, TV에 나가 인지도를 얻은 뒤엔 “네가 과거에 낸 책을 가지고 있다”는 협박 전화가 이따금 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 한심한 것은 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려고 교보문고에 죽치면서 사재기를 한 일이었다. 하루에 10권씩, 계산대 여러 곳을 돌면서 어머니와 함께 책을 샀는데, 베스트셀러는커녕 1쇄도 소화하지 못한 채 절판된 책이 대부분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것, 그 후 난 8년간의 글쓰기 지옥훈련에 돌입했고, 결국 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쓴다.

[서민의 어쩌면]명박의 꿈

이명박 전 대통령(이하 명박님)도 베스트셀러를 쓰는 꿈을 가졌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이번 회고록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 전에도 명박님은 꾸준히 책을 내셨다. 2005년에 출간된 <신화는 없다>를 비롯해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 <이명박의 흔들리지 않는 약속> 등이 명박님이 쓴 책들인데, 초창기의 내가 그랬듯 이 책들이 판매량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모양이다. 작년 말에는 세계적 작가로 거듭나기 위해 <미지의 길>이란 영문 자서전을 미국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점에 많은 돈을 지불해야 가능한 ‘화제의 시간 진열대’에 책을 전시하는 등 갖은 노력을 했음에도 1000권 남짓 팔리는 데 그쳤으니, 명박님의 실망이 컸을 듯하다. 이 상황에서 베스트셀러의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쓰기 지옥훈련을 택한 나와 달리 명박님은 스케일이 큰 모험을 선택한다.

첫째,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를 보면서 사람들이 의문을 가진 건 이런 점이었다. “그렇게 돈도 많은데, 왜 정치판에 나와서 욕을 들입다 먹을까?” 나 역시 그게 의문이었다. 그 좋아하는 돈도 사회에 헌납할 만큼 대통령이 꼭 돼야 했을까? 하지만 그분이 책으로 뜨기 위한 수단으로 대통령에 출마했다고 생각하면 모든 게 이해된다.

둘째, 4대강 사업을 했다.

인터넷을 보면 이런 질문이 많이 올라와 있다. “4대강 사업은 왜 한 거예요?”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답변도 제각각이다. 명박님의 모교인 동지상고 동문들에게 돈 벌 기회를 준다거나, 큰빗이끼벌레를 번식시켜 미래 식량의 대안으로 삼으려 했다는 등등 말이다. 오죽하면 2014년 말에도 “4대강 사업 왜 했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겠는가. 하지만 그분이 4대강 사업을 한 건 오직 베스트셀러를 쓰기 위함이었다. 많은 국민이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판이니, 회고록이 나온다면 서점에 달려가 책을 사지 않겠는가.

[서민의 어쩌면]명박의 꿈

셋째, 자기만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평범한 사람은 관심을 끌기 어렵다. 사람이 너무 착해도 재미가 없다. 재임 시절 명박님만큼 독특한 캐릭터를 만든 대통령이 또 있을까? 우리 국민들은 “해봐서 아는데”를 비롯한 그의 유행어에 즐거워했고, 자기가 한 일을 남의 일처럼 말하는 ‘유체이탈화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또한 친·인척과 측근들의 상당수를 감옥에 보내는 등 ‘나쁜 남자’의 이미지까지 보여줬는데, 이 캐릭터들은 훗날 베스트셀러를 쓰는 밑천이 됐다. 이번 회고록에선 나르시시스트로 분한다고 하니, 정치적 반대자들마저 열광할 수밖에 없으리라.

넷째, 노이즈마케팅을 했다.

베스트셀러에서 중요한 건 마케팅, 하지만 이 책은 굳이 돈을 들여 광고할 필요가 없었다. 남북 간의 회담이나 세종시 수정안 등 민감한 소재를 다룬 게 주효해서 9시 뉴스와 중앙일간지 1면에서 명박님의 회고록이 수도 없이 언급됐으니까. 이것 역시 베스트셀러를 노린 명박님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왔다는 게 내 추측이다.

이런 이유로 명박님이 쓴 <대통령의 시간>은 각 서점에서 집계하는 종합베스트셀러의 순위권에 올라 있고, 이런 추세면 현재까지 대통령 회고록 판매 1위를 지키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명이다>를 능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자는 이 책이 800쪽 분량으로 쓰인 것, 2만8000원의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이 붙은 점, 책 할인을 금지하는 도서정가제 시행 직후에 출간된 점 등의 이유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확실한 것은 명박님이 보통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을 해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욕먹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분, 우리가 모셨던 대통령은 바로 그런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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