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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게양과 애국심

입력 2015.03.08 20:30

수정 2015.03.0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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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100여m 도로에는 태극기가 양편으로 도열해 있다. 새로 설치된 깃대에 30도 기울기로 꽂힌 태극기들은 전형적인 주거단지였던 지금까지의 아파트 입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군부대나 독립기념관, 현충일날 국립묘지로 들어서는 장엄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아침을 열며]국기게양과 애국심

이곳에 태극기가 도열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3·1절을 이틀 앞둔 지난달 27일 현관문 벨이 울렸다. 문을 여니 경비아저씨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라는 물음에 아저씨는 “국기를 나눠주라고 하네요”라며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국기세트를 내밀었다. 부녀회와 입주민대표자회의가 전 가구(750여가구)에 무상으로 나눠주는 거란다. 동호수 란에 꼼꼼히 사인까지 받은 아저씨는 반드시 국기를 달아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단지 내 방송에서도 3·1절을 맞아 전 가구가 국기를 달아야 한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바로 태극기 달기 운동의 하나였던 것이다.

국경일에 국기를 내거는 것은 국민들이 해야 할 중요한 행위다. 특히 일제에 항거해 목숨을 건 만세운동을 펼친 3·1절이나 36년 압제에서 풀려난 광복절은 다른 국경일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그래서 필자도 그런 날이면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스스로 나서 국기를 빠짐없이 내걸었다. 하지만 거저 주어진 그날의 새 국기세트를 받아든 필자의 심경은 복잡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라는 게 그때의 솔직한 감정이었다. 태극기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게다가 받을 사람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은 채 국기세트를 배달까지 해주는 이 친절이 주는 불편함과 무례함이 마음속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얼마 전 뉴스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전에 정부가 대대적으로 국기 달기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소식이 있었다. 심지어 과거처럼 국기하강식을 다시 시행할 것이라는 소식도 뒤따랐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국기하강식을 입에 올리면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해석도 더해졌다. 물론 해당 부처는 강제적 국기게양식과 국기하강식은 군대나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필자는 그날 배달된 국기세트와 경비아저씨의 겸연쩍은 강요가 마뜩잖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개인의 의사를 무시한 강제성에 대한 반감일 것이다. 왜 누군가가 나의 국기 게양까지 간섭하는가, 왜 애국에 대한 표출마저 누군가인 너희들이 지시하고 강제하려 하느냐에 대한 불편함일 것이다.

알다시피 애국은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애국에 마음 심(心)자를 붙여 애국심이라고 이르는 것은 애국은 몸의 문제이기에 앞서 마음의 문제라는 뜻이다. 애국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 나의 몸이 애국적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애국심의 본질이다.

그럼 내 마음을 애국심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이뤄져야 하는가. 당연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대한 고마움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후손에게 길이 물려주고 싶을 정도의 자부심이 흘러넘쳐야 한다. 말하자면 이 땅의 아이들이 공부에 치이기보다는 건강하고 튼실하게 자라나고, 젊은이들이 취업에 목매달기보다는 자신만의 미래를 설계하고, 가장들이 실업과 퇴직의 공포에서 벗어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노인들이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다면 그곳에는 자연스럽게 애국심이 자란다.

또 국가의 법 집행이 공정하고, 경제적 빈부가 그리 크지 않고, 이웃 간의 정이 도탑다면 그곳에서도 애국심은 튼튼히 뿌리를 내린다. 특히 대한민국을 사랑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종북세력이라 낙인찍어 몰아붙이지 않고, 정부 비판 세력을 반민주주의자로 폄훼하지 않고,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을 부축해주고, 세월호 가족 등 슬픔에 빠진 이들을 위로해주는 그런 나라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국기를 달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방송을 하고, 국기세트를 일일이 나눠주었지만 3·1절 우리 아파트에는 예년에 비해 그리 많이 늘었다고 할 수 없는 숫자의 국기만이 내걸렸다. 이는 강요보다는 다함께 잘사는 나라, 애국하고 싶은 나라를 먼저 만드는 것이 애국의 전제조건임을 보여준다.

국기 달기, 비록 작은 행위라 할 수도 있지만 이는 어쩌면 우리가 꽤 괜찮은 나라에서 살고 있고, 또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잣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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