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혼혈의 강’ 다뉴브에 비친 중부유럽

서영찬 기자

▲ 다뉴브…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550쪽 | 3만원

[책과 삶]‘혼혈의 강’ 다뉴브에 비친 중부유럽

수백 년 전 아메데오라는 역사학자가 다뉴브 강의 발원지를 찾아나섰다. 그는 독일 남서쪽 삼림지대에 있는 브레크 강을 거슬러 오르다 실개천이 끝나는 곳에서 낡은 집 한 채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튀어나온 홈통 혹은 관 같은 게 보였는데, 관은 장작 창고 근처를 지나면서 좀 더 아래에 있는 연못 쪽으로 물을 콸콸 쏟아냈다. 수원지인 비탈 아래로 내려가는 물은 산에 있는 이 홈통에서 나온 것이다.” 아메데오는 이후 다뉴브 강의 발원지가 ‘홈통’이라는 기이한 가설을 내놓는다. 사실 2800㎞를 흘러 흑해에 닿는 다뉴브 강의 발원지 가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독일 도나우에싱겐 마을은 다뉴브 강 발원지의 원조를 주장하며 물웅덩이 하나를 관광명소로 꾸며 놓기도 했다.

이탈리아 출신 독문학자 마그리스의 다뉴브 강 기행도 발원지에서 시작한다. 그는 다뉴브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이 냇물 저 연못이 다뉴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흘러와 섞이는 물이 어디서 왔는지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가계도 100% 순수 혈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뉴브 강은 혼혈의 강이다. 작은 지류들이 합쳐지고 갈라지듯 다뉴브 강을 끼고 다양한 민족이 서로 교류하고 갈등했다. 이 때문에 다뉴브를 모태로 한 중부 유럽 문화는 혼종의 문화다. 저자는 4년에 걸쳐 다뉴브 물길을 따라 여행하며 이를 확인했다. 그는 다뉴브 강에 얽힌 온갖 것들을 재료로 삼아 중부 유럽의 정체성에 대해 사유한다.

책은 기행문 형식이지만 픽션, 민속학, 문헌학, 문학평론, 지리학 등이 망라된 혼종적 박물지이다. 합스부르크 제국에 지배받고, 오스만튀르크의 침략에 시달려온 다뉴브 강의 삶이란 강의 굴곡만큼 부침이 심했고 또 척박했다. 저자는 그런 측면에서 다뉴브 강물을 ‘진흙처럼 누렇다’고 표현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한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을 찬미했지만 헝가리 사람들이 흔히 ‘황금빛 다뉴브’라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지도 위에 펜으로 선을 긋듯 단순명쾌하게 다뉴브 강과 중부 유럽의 정체성을 정의할 수는 없다. 저자가 다뉴브 여행을 통해 찾고자 한 것도 명쾌한 해답이 아니다. 저자는 여행을 ‘구출 작업’이라고 규정한다. 사라지고 있는 무언가를 수집하고 기록해 후세에 남기는 작업이라는 뜻이다. 유럽의 변방으로써 주목받지 못한 채 잊혀져가는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민초들의 역사와 문화가 저자의 손에 의해 훌륭하게 ‘구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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