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만평·포스터·삽화, 약자들은 ‘풍자’로 자신의 역사를 썼다

문학수 선임기자

▲ 풍자, 자유의 언어, 웃음의 정치…전경옥 지음 | 책세상 | 584쪽 | 3만원

[책과 삶]만평·포스터·삽화, 약자들은 ‘풍자’로 자신의 역사를 썼다

책에는 250여점의 풍자화가 수록돼 있다. 조지 크룩생크가 1849년 그린 ‘여성으로 채워진 법정’은 여성적인 장식과 의상으로 시끄럽게 붐비는 법정을 묘사했다. 그림이 그려진 19세기 중반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권리를 지녀야 한다는 주장이 한창 제기되던 때다. 하지만 이 한 컷의 그림은 여전히 가부장 권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성이 사회의 주도세력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황당하고 부조리한 일이라고 비꼬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풍자는 대중의 생산품이 아니라 문화 주도자인 엘리트가 대중에게 팔기 위해 만든 생산품”이다. “때로는 설득하기 위해, 때로는 선동하기 위해, 또 때로는 그저 재미로 그려진 것들”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풍자’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감지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풍자는 정치적이다. 이 책이 주시하는 것도 바로 ‘정치’다. 저자는 “이미지라는 문화적 형태와 풍자라는 문화적 행위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이 되는지를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집필 의도를 밝힌다. 사실 풍자 이미지는 오래전에 등장했다. 기원전 1360년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정부의 관리를 공격하기 위해 풍자화가 등장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 로마의 벽화에서도 풍자 이미지가 발견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포스터 형식의 풍자화가 대중 사이에 유행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근대에 초점을 맞췄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근대국가가 형성되던 시기에 대중에게 배포됐거나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서 선전·선동의 용도로 사용됐던 만평, 포스터, 삽화 등을 살핀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그림이 중심이다. 그 250여점의 풍자그림을 통해 강자 중심주의에서 배제됐던역사의 이면을 드러내는 것이 저자의 의도로 보인다. 말하자면 근대와 근대성을 풍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은 여섯 개 키워드로 당대의 풍자화들을 기술했다. ‘당황하는 왕, 경계에 선 귀족’은 도전받는 왕권과 귀족들의 권력 및 몰락을 다뤘다. ‘부도덕한 신’은 교회와 성직자, ‘불안한 대중, 해이한 대중’에서는 대중의 속성을 살폈다. ‘근대적 엘리트’는 새롭게 부상한 엘리트 계층에 대해, ‘왜곡된 여성’에서는 여성을 사치와 부패의 표본으로 바라봤던 당시의 시각에 대해 서술한다. ‘적과 동지’는 근대 들어 격심해진 국가 간 갈등을 내용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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