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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설립 ‘장발장은행’ 홍세화 공동대표 “극빈층 노역 않게 ‘사회 온정’ 빌려드립니다”

입력 2015.03.15 19:02

수정 2015.03.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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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못 내 교도소… 연 4만명, 최대 300만원까지 무이자 대출

보름 만에 후원자 350명 넘어… 대출금 상환 우려에 “기우일 뿐”

기초생활수급자 김모씨(50)는 압류딱지를 떼어낸 혐의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뇌졸중으로 투병 중인 데다 자녀 2명을 부양하고 있다. 주변에서 돈을 구할 수 없던 김씨는 한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교도소행을 면할 수 있었다.

돈 없는 은행이 문을 열었다. 대출은 해주되, 이자는 받지 않는다. 조건이 있다. 김씨처럼 단순 벌금형이지만 낼 돈이 없어 감옥에서 노역할 처지인 ‘장발장’이어야 한다.

홍세화 장발장은행 공동대표는 지난 1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난 때문에 자유를 박탈당하는 이웃에게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 김영민 기자

홍세화 장발장은행 공동대표는 지난 1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난 때문에 자유를 박탈당하는 이웃에게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 김영민 기자

지난달 25일 첫걸음을 뗀 ‘장발장은행’(www.jeanvaljeanbank.com)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무일푼으로 발족한 지 보름 만에 354명의 개인과 단체가 7000여만원의 성금을 보내줬다. 몇 천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십시일반이었다. 김씨를 포함해 33명이 도움을 받았고, 4차 대출심사가 진행 중이다.

장발장은행의 공동대표를 맡은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68)은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가는 사람이 1년에 4만명이 넘는다는 게 실감이 난다”고 했다. 지난 11일 서울 합정동에 있는 ‘가장자리’에서 만난 홍 대표는 “가족이나 친구한테조차 돈을 구할 수 없어 철창 신세를 져야 하는 이들에게 ‘사회적 모성’을 느끼게 해줘야 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장발장은행은 인권연대가 벌이고 있는 ‘43199’ 캠페인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명칭은 벌금형을 받고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가는 사람이 2009년 기준으로 4만3199명에 이른다는 데서 착안됐다. 현행법상 벌금을 선고받으면 30일 내에 일시불로 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일당을 계산해 벌금 액수만큼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노역을 해야 한다. 이에 인권연대는 소득에 비례한 벌금 부과, 벌금 나눠내기, 납부기한 연장, 사회 노역 등을 제안했다. 소득불평등이 형벌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법제도를 고쳐보려 했지만 국회나 정부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 은행을 설립했다고 홍 대표는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그 자체로 형벌입니다. 돈이 자유를 빼앗아가는 세상을 한 뼘이라도 밀어내는 게 장발장은행의 존재 이유입니다.”

장발장은행은 무이자로 최대 300만원까지 대출해준다. 6개월 거치, 1년간 균등분할 상환방식이다. 단, 파렴치범이나 상습범은 대출 대상에서 제외된다. 소년소녀가장이나 차상위계층을 우선한다.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극빈층이 대다수다보니 ‘그들이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홍 대표는 “그건 기우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출이 결정된 이들 중 대부분이 ‘이 돈이 어떤 돈인데 안 갚겠느냐’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거치기간 없이 당장 다음달부터 나눠 갚겠다는 이도 있다고 한다. 그들은 대출금을 갚아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상환율이 높을 것이라고 홍 대표는 기대했다.

만에 하나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홍 대표는 강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후원금을 내면서 그 돈을 반드시 돌려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장발장은행 덕분에 1명이라도 불행한 운명에서 벗어나 사회가 내미는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면 10명이 못 갚아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에서 20년간 망명생활을 하고,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통해 ‘톨레랑스’(관용)를 역설한 그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그야말로 옛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유물로 사람의 가치를 측정하고 지나친 소유욕이 세상을 지배하다보니 우리의 정신세계가 신자유주의화됐습니다.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은 점점 사회관계망에서 격리되고 있고요.”

재판받은 이들을 또다시 심사한다는 것에 괴롭다는 홍 대표는 조만간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법제도 개선이 가장 중요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이중삼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우리들의 관심”이라고 호소했다.

문의는 (02)749-9004, 후원은 388-910009-23604 하나은행(예금주 장발장은행)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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