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접근에 위기감… 네타냐후 ‘무리수’에 오바마 ‘싸늘’

구정은 기자

미국·이스라엘 ‘애증의 드라마’… 최악의 관계 두 우방국 어디로 가나

오바마 평화정책·중동 변화바람에 ‘이스라엘의 효용’ 떨어져

네타냐후, 총선 때 “팔 공존 거부” 강수… 미국 불신만 심화

1987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적대국가인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팔아 그 돈으로 니카라과 우익 콘트라 반군을 지원해준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은 이스라엘을 중개자로 삼아 이란에 토우 미사일을 넘겼고 이스라엘은 중간에서 이득을 챙겼다.

2007년 4월 콜롬비아에서 우익 민병대 ‘콜롬비아방위군연합(AUC)’에 비밀리에 무기를 대준 이스라엘인들이 체포됐다. 당시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는 좌파 게릴라에 맞선 콜롬비아 우파 정권의 ‘마약과의 전쟁’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AUC는 미 정부가 테러조직 명단에 올려놓은 그룹이었다. 콜롬비아 정부를 돕기 위해 우익 민병대를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할 수 없는 ‘더러운 작업’을 이스라엘이 대신 해준 셈이었다.

■ ‘미 대리인’ 효용 떨어진 이스라엘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래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로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그런데 최근 양국 관계는 수십년 만에 최악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와 이스라엘 우파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인식차이가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이스라엘이 수행해온 ‘미국의 대리인’ 역할의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전략적 상황 변화가 숨어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주로 영국 정보기관들과 거래하던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1956년 4월 소련 지도자 흐루쇼프의 공산당 전당대회 ‘비밀연설’ 내용을 입수해 CIA에 전달했다. 스탈린주의와의 결별을 담은 이 연설을 입수함으로써 미국은 소련의 중대 변화를 탐지할 수 있었으나, 그 후 이스라엘에 민감한 정보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이 미국에 중요해진 것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친미 파흘라비(팔레비) 왕조가 붕괴한 뒤부터였다. 미국 중동정책의 중심축이던 이란이 무너지자 미국과 이스라엘은 더욱 밀착했다.

이는 미국 내 유대인들의 로비에 따른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였다.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정권이 민족주의 좌파 정권들을 무너뜨리는 비밀공작을 맡아 했듯, 이스라엘은 냉전 시기 중동·중남미에서 친미 쿠데타 세력에 무기·용병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2000년대 초반 미주기구(OAS)는 이스라엘 군수업체들이 니카라과·과테말라 등 중남미 지역과 시에라리온을 비롯한 서아프리카 일대에 무기를 공급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 이스라엘, ‘공존’ 받아들일까

냉전이 끝난 뒤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이스라엘 노동당 정권은 1993년 팔레스타인과 협상해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스라엘에 강경파 정권이 들어서고 팔레스타인 민중봉기(2차 인티파다)가 일어나면서 중동분쟁은 오히려 악화일로를 걸었다. 오바마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는 인식을 보였다. 2011년 5월 오바마는 중동평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이·팔 국경선은 1967년 경계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1967년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켜 빼앗은 땅을 돌려줘야 한다고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아랍의 봄’으로 이집트 군부정권이 무너진 탓도 있었다. 미국은 중동에서 과거처럼 이스라엘과 친미 독재정권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최대 앙숙인 이란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이스라엘은 미국과 이란의 대화를 엄청난 위협으로 본다. 미·이란 관계가 풀리면 이스라엘의 입지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건국대 중동연구소 성일광 전임연구원은 “오바마 정부는 이스라엘에 특사를 파견하고 존 케리 국무장관을 보내며 중동평화협상을 진전시키려 애썼으나 네타냐후 정권의 강경한 태도 탓에 실패했고 결국 2기 들어서는 이란 핵협상에 주력하고 있다”며 “이라크 문제와 이슬람국가(IS) 문제 등에서 미국은 이란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네타냐후는 지난 17일 총선에서 대미 관계가 나빠지면서 생긴 유권자들의 위기의식을 자극, 보수표를 끌어내 승리했다. 그는 총선 기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없을 것”이라며 오슬로 협정 이래의 원칙인 ‘이·팔 두 국가 해법’을 뒤집었다. 선거 뒤 네타냐후는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며 번복했지만 오바마 정부의 반응은 싸늘하다.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비서실장은 23일 “네타냐후의 모순된 말들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며 이스라엘이 50년간의 무력 점령을 끝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관건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도 “진짜 문제는 네타냐후의 반쪽 사과가 아닌 그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성 연구원은 “네타냐후의 새 연정도 이전처럼 강경파들로 채워질 것”이라며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신뢰가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이스라엘에 강경한 태도를 보일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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