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정부 땐 무기 뒷거래 스캔들도
1948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안에 정책조정실(OPC)이라는 비밀조직이 만들어졌다. 반미 정권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이 조직의 임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외국계 석유회사를 국유화한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를 축출한 일이다.
이후 반세기 넘게 미국과 이란은 맹방에서 적국으로 애증의 관계를 넘나들었다. 반모사데그 쿠데타에 일조했던 레자 샤 국왕의 파흘라비(팔레비) 왕조는 전제정치를 자행하면서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충실한 동맹 노릇을 했다. 하지만 이 관계는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끝을 맞았다. 왕조를 무너뜨린 호메이니는 미·소 냉전이 첨예했던 시기에 어느 쪽과도 협력을 거부하며 자신들만의 ‘신정 국가’를 세웠다. 미국은 중동전략을 다시 짜야 했고, 이스라엘과의 밀착관계가 더욱 깊어졌다. 혁명이 일어난 그해 11월 대학생들이 테헤란 미 대사관을 점거해 미국인들을 444일간 인질로 잡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과 이란은 서로를 ‘악마’라고 불렀으나 이면거래도 없지 않았다. 미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무기 금수 대상국인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팔아 그 돈으로 니카라과 우익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1985년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폭로돼 레이건 정부가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관계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이란에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다. 하타미는 경제·사회적 개혁을 추진하며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려 애썼다. 그러나 2005년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집권하면서 해빙무드도 크게 후퇴했다. 특히 이 시기 미국에는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정권이 들어서 있었다. 2002년 미국에 망명한 이란인들이 이란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한 뒤로 제재가 강화되던 때였다.
아마디네자드는 2013년 중도온건파 하산 로하니에게 정권을 내줬다. 2013년 9월 로하니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역사적인 통화’가 이뤄졌고 그해 말 양측은 핵협상에 잠정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