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견제의 정치력’ 이란 하메네이
1989년 이후 최고지도자… 군부·성직자 아우른 인맥
“영웅적 유연함 보여줬다”
“영웅적인 유연성을 보여준 것.” 민간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의 이란 전문가 알리 바에즈는 5일 파이낸셜타임스에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75)의 결단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란은 4년마다 직선제로 뽑는 대통령, 역시 국민들이 선출하는 마즐리스(의회), 보수적인 이슬람 법학자들로 구성된 사법부, 성직자 집단과 혁명수비대(군부)가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상호견제하는 권력구조를 가진 나라다.
핵 협상에 반대하는 강경파의 입을 막고 하산 로하니 정부가 핵 합의를 성사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은 이 복잡한 권력구조의 정점에 있는 ‘벨라야트 이 파키르(최고지도자)’ 하메네이였다.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 4일 “최고지도자의 지침이 핵 협상을 진전시키는 빛이 돼줬다”고 치하했다. 이란데일리 등은 5일 군 최고위 장성인 하산 피루자바디 육군참모총장이 하메네이에게 핵 합의 ‘축하’ 인사를 보내며 협상 타결을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아직 하메네이는 핵 합의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나, 최측근인 피루자바디의 입을 통해 협상결과를 승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하메네이는 이란 정치사의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었다. 소수민족 아제르계이지만 파르시(이란어)와 아랍어 모두에 능통하며 1989년까지 8년간 1~2대 대통령을 지냈다. 1989년 호메이니 사망 뒤 최고지도자로 뽑혔을 때만 해도 카리스마가 없다는 평을 들었으나 절묘한 균형잡기와 성직자·군부를 망라하는 인맥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겉으로는 종교적 권위를 내세우지만, 하메네이 정치술의 핵심은 ‘견제’다.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 정권 때에는 번번이 개혁 속도를 늦추며 체제를 단속했다.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 때에는 오히려 보수파들을 견제했으나, 대선 부정선거 의혹으로 테헤란에 시위대가 몰려나오자 강경대응을 주도했다. 아마디네자드의 거친 행태로 고립이 심해지고 경제가 무너진 후에는 로하니 정권을 지원하며 핵협상을 승인했다.
핵 합의가 하메네이에게는 ‘독이 든 성배’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했지만 하메네이는 군부와 성직자 집단 등 보수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향후 다른 전략적 이슈들에서까지 후퇴하지는 않을 것임을 보수파들에게 보여줘야만 하는 입장”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분석했다.
호메이니의 유지를 잇는 최고지도자는 이란 헌법상 최고권력자다. 최고권력기구인 혁명수호위원회 위원 12명 중 절반을 지명하고 사법부 수장과 군사령관을 임명한다.
그렇다고 ‘무소불위의 권력자’는 아니다. 종신직이지만 세습권력은 아니며 전문가위원회라는 기구에서 후임을 선출한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 ‘물밑의 협상력’ 미국 설리번
전 백악관 안보 부보좌관… 이란과 비밀접촉 대화 물꼬
클린턴 전 국무와도 친밀
이란 핵합의 이후 미국 내에서 새롭게 뜬 별이 있다면 제이크 설리번 전 백악관 안보 부보좌관(38)이다.
설리번은 2012년 7월 국무부 정책기획과장으로 있던 중 오만의 술탄으로부터 이란이 대화 의사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이란의 협상 의지를 시험해보기 위해 처음 비밀접촉에 나섰던 인물이다. 직책이 높지 않았기에 그의 존재는 눈에 띄지 않았고, 민감한 외교협상의 보안을 유지하기 쉬웠다.
이듬해 3월 빌 번스 국무부 부장관이 비밀협상에 합류할 때까지 그는 수차례 이란 측과 만나 밑그림을 짰다. 설리번이 2013년 9월 유엔총회에 참석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화통화를 성사시키며 협상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는 오바마 전화를 로하니에게 연결하기 직전까지도 ‘이 번호가 정말 맞는 번호일까’ ‘혹시 사기꾼한테 낚인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해 했다고 한다.
설리번은 지난해까지 조 바이든 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내다 지금은 모교 예일대 로스쿨의 방문교수로 있다.
하지만 행정부를 떠난 뒤에도 이란 핵협상 선임고문의 직함을 갖고 사실상 협상에 참여해왔다. 설리번이 주목 받는 이유는 그가 오바마의 참모로 이란 핵협상을 했지만 사실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최측근이라는 점이다. 친(親)오바마계이면서 친클린턴계인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매우 드문 경우다. 예일대 로스쿨 졸업 후 대법원 재판연구원으로 일했던 그는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클린턴의 정책참모로 중앙 정계에 입문했다. 클린턴의 패배가 짙어지자 오바마 캠프로 갔지만, 오바마에 의해 국무장관에 낙점된 클린턴은 그를 다시 불렀다. 클린턴 국무장관의 선임보좌관이었던 필립 레인스는 설리번을 “한 세대에 나올까 말까 한 인재”라고 칭찬했다. 클린턴이 2012년 장관에서 물러난 뒤에도 오바마는 설리번이 이란 핵협상을 초기부터 해온 점을 들어 백악관에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설리번은 백악관 업무 와중에도 개인 시간을 내서 클린턴 회고록 <어려운 선택들>의 원고를 다듬었다.
조만간 출마 선언이 예상되는 클린턴 캠프에서 그는 외교안보팀 좌장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 AP통신, 폴리티코 등은 클린턴이 집권할 경우 설리번이 역대 최연소 국가안보보좌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비서는 대외적으로 입이 없다고 했던가. 이란 핵합의 이후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설리번을 조명하고 있지만 그는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오바마의 5일 뉴욕타임스 인터뷰는 이란 핵협상에 오바마 개인이 얼마나 깊이 개입했는지 잘 보여준다. 설리번의 존재는 그런 이란 핵합의를 이끈 오바마 행정부의 정신이 클린턴으로 정권이 넘어갈 경우에도 이어질 것임을 담보하는 것 같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