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문가 “발언권 확대… 사우디 등 주변국 불안 커져”
‘중동의 거인이 깨어났다.’
핵협상이 최종 타결되기까지는 아직 절차가 남았지만 중동 전문가들은 이란이 국제무대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역내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동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을 그나마 잘 갖추고 있고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이란이 긴 잠에서 깨어난 것만으로도 중동 정치질서를 흔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9일 “이란은 패권국가가 될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 나라”라며 “중동에 이란을 축으로 하는 ‘시아벨트’가 전면에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은 핵을 문제 삼았지만 가장 두려워한 것은 이란이 정상적인 국가로 세계무대에 돌아오는 것이었다”며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눌러놓았던 이란의 발언권과 존재감이 커질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연구센터 교수도 “이란은 30번 넘게 직접선거를 치른 중동 최고의 민주국가”라고 말했다. 그는 “8100만명의 인구에 교육열도 높고 천연자원도 풍부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리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 아랍국들은 심리적 압박감을 느낄 것”이라며 “우리가 중국의 부상을 보며 느끼는 불안감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아랍이 중동을 정복하기 전까지는 페르시아(이란) 문화가 중동의 중심이었고, 이슬람 개종 후에도 문화를 이끌어온 것은 페르시아인들”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 후손인 이란의 역사적·문화적 우월성도 주변국들을 긴장하게 하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위기감을 느낀 아랍국들이 ‘핵보유권’을 거론하며 미국을 압박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소 중동연구센터장은 “중동 국가들이 당장 핵보유권을 갖겠다고 나서진 않겠지만,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이 일관적이지 않다며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사우디는 공공연하게 ‘이란이 핵을 갖는다면 우리는 파키스탄에서 직수입하겠다’고 미국을 압박했다”며 “아랍국들은 핵협상 자체보다 ‘친이란적인’ 미국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사우디 등은 이미 오랫동안 미국의 ‘안보우산’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기가 쉽지는 않을 것”(서정민 교수)이라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