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풍부해 제조업 기반 튼튼
제재 덜 풀려 리스크 관리 필요
인구 8100만명의 중동 최대 시장, 굳게 걸어잠겼던 이란의 문이 이제 열릴까. 한국 기업들도 핵합의 뒤 이란 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코트라 테헤란무역관 김승욱 관장(50)은 8일 “최근 이란 바이어를 소개해달라거나 이란 진출 방법을 묻는 한국 기업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코트라 테헤란무역관 김승욱 관장
한국은 이란의 주요 교역국 중 하나다. 이란의 수입 상대국 중 중국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이어 한국이 3위다. 2013년 이란은 한국에서 3조4744억달러어치를 사갔다. 가전시장은 한국산이 거의 독식하고 있으며 자동차도 인기가 많다. 특히 <대장금>과 <주몽> 같은 사극이 현지 국영TV에서 방송돼 큰 인기를 얻으며 한국 제품의 이미지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2011년 이란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한국도 직격탄을 맞았다. 2012년 이란과 거래하던 한국 기업은 약 3000개였는데, 이듬해 2200여개로 줄었다. 김 관장은 “그나마 한국은 이란 은행을 통한 원화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유럽 기업들보다는 사정이 좀 나았다”고 말했다.
오랜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2차산업이 경제의 35%를 차지할 정도로 제조업 기반이 튼튼하다. 석유와 가스뿐 아니라 아연과 철광석 매장량도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간다. 25세 미만 인구가 42.4%를 차지하며 대학진학률은 70%가 넘는다. 김 관장은 “지난해 부임했을 때 오랜 경제제재 속에서도 이 정도로 경제가 돌아가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며 “고립에서 벗어나면 이란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이란셀 같은 통신사가 4G 통신망을 깔려고 하는데 기지국 장비가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어 아직 한국이 수출을 못하고 있어요. 전력과 물이 부족하니 발전장비나 담수화시설 수요도 있고, 건설 프로젝트도 필요합니다. 노후화된 자동차 부품이나 산업설비, 병원장비, 소비재 등 이란에 진출하면 유망한 품목이 매우 많습니다.”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한복판에 있는 이란은 물류 분야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제재가 끝나면 이란의 최대 항구인 남부 반다르아바스 항구가 열린다. 김 관장은 “중동 최대 허브인 두바이 국제공항은 해수면 높이에 있지만 테헤란의 이맘호메이니 공항은 해발 1200m 고지대에 위치해 연료효율이 좋다”며 항공운송도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관장은 “하지만 아직 제재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어서 리스크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고 이란 진출을 타진하는 한국 기업들에 당부했다. 그는 “물론 제재가 다 풀린 뒤에 준비하면 늦기 때문에 유럽 기업들도 이미 이란 진출을 타진 중”이라면서도 “무작정 이란을 ‘황금의 땅’으로 보고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국영여행사 아이토 송은희 한국팀장
이란과 한국의 교역이 늘고 오가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란 기대감은 테헤란에 사는 200여명의 교민들 사이에도 조금씩 퍼지고 있다. 국영 여행사 아자디국제관광기구(아이토) 한국팀장 송은희씨(44)는 8일 “2013년 11월 핵 협상이 잠정 타결되고 제재가 유예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한국 등 각국에서 오는 관광객과 기업인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테헤란의 호텔 수용 능력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지난해 4~5월 아이토는 400여팀의 예약을 무산시켜야 했다. 올해는 6개월 전부터 호텔을 잡아놨는데도 방이 모자라 50여팀을 받지 못했다. 아이토는 지난해 한국 부문 비자담당 직원을 1명에서 2명으로 늘렸다. 송 팀장은 “지난 2일 핵 합의 후 한국 단체여행 패키지 상품 예약자가 늘어 정원을 꽉 채웠다”며 “연말에는 한국 기업인 100명가량이 박람회 참석차 이란에 들어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테헤란 교민들과 주재원들은 “한·중·일 가운데 한국만 직항편이 없고 아시안 슈퍼마켓에서도 한국 식재료가 가장 비싼데 앞으로는 사정이 좀 좋아질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