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전사 곧 남자다움”… 국가, 죽음을 신화·국유화하다

서영찬 기자

▲ 전사자 숭배…조지 모스 지음·오윤성 옮김 | 문학동네 | 311쪽 |2만원

[책과 삶]“전사 곧 남자다움”… 국가, 죽음을 신화·국유화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위를 가리켜 ‘산화(散花)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산화라는 말에서 숭고한 희생을 발굴하고 대중적 언어로 정착시킨 장본인은 제국 일본이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때 전장에서 스러진 병사들을 기리고, 입대를 독려하면서 이 말을 즐겨 사용했다. 일본 국민은 산화라는 말에서 벚꽃이 분분히 흩날리는 광경을 연상했다. 처연하고 숭고한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전사는 숭고한 행위로 승격됐고, 종국에는 신화가 되어 숭배됐다. 가미카제 특공대의 돌진은 산화의 최절정이었다.

전사자 숭배는 18세기말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군대에 맞선 프로이센군의 전쟁에서 발아했다. 자원입대하는 의용병의 등장은 귀족과 용병이 주축이었던 전쟁의 성격은 물론 전사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의용병은 대의를 좇았다. 프랑스 혁명전쟁에서는 자유를, 프로이센 전쟁에서는 전통·공동체 운명을 사수했다. 의용병으로 참전한 엘리트 청년들은 이 같은 가치를 시와 산문으로 퍼뜨렸다. 영국 시인 바이런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하며 오스만 튀르크에 맞서 그리스적인 것을 지키자고 노래했다. 청년들에게 전쟁은 공포가 아니라 보편적 이상을 탐색하는 낭만적 무대였던 셈이다. 그 속에서 전우애, 용기, 남자다움은 새 시대의 가치로 떠올랐다.

막 잠에서 깨어난 국민 국가는 이들의 열정을 적극 활용했다. 전사는 곧 조국애로 해석됐고, 전쟁의 경험은 신화화됐다. 전사자를 함께 매장한 묘지가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전사자의 추모는 이제 가족 차원에서 국가 차원으로 옮아간다. 저자는 이를 ‘죽음의 국유화’라 했다.

전사자 숭배가 본격화한 것은 1차 세계대전이었다. 참호전은 전우애와 남자다움을 더욱 공고히 했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남자다운 청년’이라는 테마는 국가에 의해 무한 재생됐다. 히틀러도 <나의 투쟁>에서 남자다움을 역설한다. 남자다움 이데올로기에 취한 ‘1914 세대’에 나태, 쾌락, 개인주의 등은 사악한 것이었다. 선한 것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공동체적 가치였다. 남자다움의 신화는 우파에 의해 재발견됐고, 내셔널리즘과 파시즘의 토대가 됐다. 저자는 1차 대전 이후 정치가 야만적으로 변한 것은 전사자 숭배·남자다움 신화가 한몫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사자 숭배는 시들해졌다. 유럽인들이 비로소 전쟁에서 아마겟돈의 징후를 보았기 때문이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처럼 무덤들이 가지런히 정렬된 묘지는 1차 대전 이후 등장했는데, 열병식을 연상케 한다. 전사자 숭배의 중심에는 묘지가 있었다. 유럽인들은 전사자 묘지를 신전, 제단에 비유했다. 그리스도의 이미지와 결부시키기도 했다.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전사자를 기리는 의례는 국가 중대사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사자 숭배는 국가 숭배와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셔널리즘이 득세하면 전사자 숭배 역시 부흥한다. 일본 위정자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까닭도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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