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경제제재로 물가 올랐지만 제조업·농업 발달 자급자족 가능
종교적 이유로 차별하는 일 없어… 아르메니아인 위한 클럽도 영업
미국에 대한 적대감 아직 있지만 젊은이들은 미국 팝송 ‘흥얼흥얼’
‘지구상에 단 3개국 남은 미국 지정 테러지원국 중 하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거명한 나라’ ‘광활한 열사(熱沙)의 땅 위에서 석유로 먹고사는 나라’.
중동의 대국 이란에 대해 흔히들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일부는 오해다. 이란은 사막이 아닌 서남아시아의 고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북쪽 산악지역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어 이란 사람들은 5월까지도 스키를 탄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오랫동안 고립돼온 이란인들이 서방 문물이나 외국인, 특히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적대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또한 선입견이었다. 지난 6일 도착한 테헤란 이맘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는 한국인 관광객에게 주는 15일짜리 도착비자가 단 30분 만에 나왔다. 비자창구 공무원은 “잔돈이 없다”는 말 한마디에 비자대금 33달러를 흔쾌히 32달러로 깎아줬다.

1979년 대규모 인질사건이 벌어졌던 이란 테헤란의 옛 미 대사관 건물 앞을 지난 12일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담벼락에 ‘미국 타도’라는 구호가 쓰여 있다. 테헤란 | 남지원 기자
이란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많은 이란 시민들은 외국인인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 이란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주몽>이나 <대장금> 이야기를 꺼냈다. 길을 찾지 못하고 있으면 영어를 잘하는 이들은 선뜻 길을 가르쳐줬고, 영어를 못하는 이들은 아예 목적지까지 데려다줬다. 오랜 제재로 문화유산 규모에 비해 관광객 수가 적기 때문에 이란인들은 외국인을 신기해하고 환영한다.
30년 넘는 경제제재로 빈곤과 생필품 부족에 시달릴 것이란 인식도 대표적인 오해다. 이란은 석유를 내다 판 돈으로 국가경제가 유지되는 걸프 아랍국들과 달리 제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40.7%를 차지할 정도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제 시스템을 갖췄다. 국토가 넓고 농업이 발달해 식량도 풍부하다.
물론 오랜 경제제재가 이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란인들은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지난 11일 이란의 유명 관광도시 이스파한에서 만난 카펫 가게 주인 후세인(37)은 “제재 때문에 물가가 많이 올라 힘들기는 했지만 우리는 자동차부터 음식까지 모든 걸 생산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공식 국명이 ‘이란이슬람공화국’이고 국민의 99%가 시아파 무슬림인 이란은 당연히 이슬람 색채가 강하다. 호텔방에는 기도용 카펫과 코란이 마련돼 있고 천장에 메카 방향이 표시돼 있을 정도다. 관광객들만 오가던 모스크는 저녁 기도시간이 되면 무슬림들로 꽉 찼다. 하지만 이란은 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신정국가보다는 훨씬 열려 있다. 무슬림을 대상으로 포교만 하지 않으면 다른 종교인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주요 도시에는 아르메니아정교회 성당과 유대교 회당이 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차별받기는커녕 무시 못할 영향력을 행사한다. 테헤란에는 공식적으로 술을 판매하는 아르메니아인 클럽이 있을 정도다.
이란의 미국에 대한 적대감은 아직까지 강하다. 1979년 대규모 인질사태의 현장인 테헤란 미 대사관 담벼락에는 미국을 저주하는 벽화가 가득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나 팝송, 할리우드 영화 등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은 크지 않아 보였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랬다. 지난 10일 이스파한의 카주 다리에서 만난 대학생 오미드(21)는 “미국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란에서는 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자얀데 강변에 가족과 소풍을 나왔다는 차도르 차림의 소녀 마리얌(17)은 유창한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며 “미국 같은 나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란에서 떠나는 길,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의 젊은 기사는 차량통행이 드문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을 큰 소리로 틀고 따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