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420d 그란 쿠페. 전면부 디자인은 3시리즈 세단과 큰 차이가 없지만 전고가 25㎜ 낮고, 루프 라인이 트렁크쪽으로 좀더 급하게 떨어진다.
BMW는 1시리즈부터 7시리즈까지 7개의 모델 라인업을 갖고 있다. 숫자가 커질수록 덩치가 커지고, 엔진 출력도 높아진다. 홀수인 1·3·5·7시리즈가 성능이나 편의성을 강조했다면, 짝수인 2·4·6시리즈는 디자인을 중시한, 좀더 멋을 낸 모델이다. 2투어 쿠페나 컨버터블 모델은 짝수 시리즈 ‘이름표’를 달고 나온다.
420d 그란 쿠페는 이 같은 구별법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모델이다. 짝수인 4시리즈라 2도어 쿠페여야 하는데, 문짝이 4개 달렸다. BMW는 이처럼 4도어지만 쿠페 스타일의 승용차를 그란 쿠페라 부른다.
디자인이 중시된 쿠페 모델 4시리즈에 문짝을 4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장점만을 잘 조합하면 멋스러운 4도어 세단이 된다. BMW 420d 엑스드라이브 그란 쿠페 스포츠 라인은 이 같은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3시리즈 세단과 달리 듀얼 타이프 머플러를 장착했다. 범퍼 디자인도 좀더 다이나믹하다.
1년여 전 쿠페 모델인 428i를 지인 4명이 함께 탄 적이 있다. 3시리즈 세단보다 전장과 전폭이 길지만 전고가 낮은 데다 쿠페여서 여간 멋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승객들은 불편해했다. 신장 175㎝쯤 되는 성인 4명이 타기에는 실내가 좁았고 조수석 앞좌석을 젖힌 뒤 뒷좌석에 타기가 번거로웠다. 시승을 한 뒤에 “428i는 멋쟁이 독신 남성이나 여성이 ‘애인’처럼 몰고 다니기에 좋은 차”라고 결론 짓고 말았다.
420d 그란쿠페는 이 같은 4시리즈 쿠페의 단점을 완화시킨 차다. 성인 4명이 4개의 도어를 통해 쉽게 승하차할 수 있고, 뒷좌석 다리 공간도 한결 여유롭다. 4도어 차량이지만 일반 세단처럼 스타일이 무디지도 않다. 전고는 쿠페보다 12㎜ 높지만 3시리즈 세단보다는 25㎜나 높아 여전히 스타일리시하다.
BMW를 타는 맛은 ‘야간 주행 때 계기판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매니아들이 많다.디테일이 강하고 전통적인 아날로그 장치와 디지털 정보창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420d 그란 쿠페의 기어 레버. 레버 왼쪽의 주행모드 선택 스위치와 오른쪽 조그셔틀 버튼은 운전자의 손이 자연스레 뻗어지는 위치에 있어 운전 중에도 쉽게 조작할 수 있다.
룸램프 뒤쪽에는 비상 상황 때 연락하는 ‘SOS’ 버튼이 있다. 용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직관적 디자인의 버튼 아이콘, 손가락으로 쉽게 누를 수 있도록 적절한 볼륨감을 가진 버튼 만듦새는 국산 완성차 업체들이 배워야 할 장점들이다.
420d 그란 구페의 ‘심장’은 2.0ℓ터보 디젤엔진이다. 최고출력 184마력, 최대토크 38.8㎏·m의 힘이 나온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수입차인 520d 엔진(190마력, 40.8㎏·m)과 같은 엔진을 차에 맞게 튜닝했다. 현대차 투싼 2.0ℓ 모델에 사용하는 터보 디젤엔진(186마력·41.0㎏·m)과 비슷한 출력이 나온다. 변속기는 토크컨버터 방식의 8단 자동변속기가 사용된다.
BMW의 1995㏄ 엔진은 효율이 높다. 모든 회전 영역대에서 출력과 토크가 골고루 나온다. 가속응답성은 즉각적이다. 고출력 엔진은 아니지만 BMW다운 맛이 살아있다. 스포츠 모드에 놓으면 외관처럼 세련된 달리기 성능이 나온다. 시속 170~180㎞까지 가속하는데 썩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BMW에 따르면 420d 그란 쿠페의 시속 100㎞ 도달 시간은 7.5초, 안전 최고속도는 시속 229㎞에 이른다.
420d 그란 쿠페의 서스펜션은 스포츠 세단의 그것만큼 하드하지 않지만 급코너에서도 잘 버텨준다.
서스펜션은 소프트하지 않지만 하드하지도 않다. 최근의 BMW는 과거 모델보다 서스펜션이 부드러워졌다는 평을 듣곤 한다. ‘M’ 같은 고성능 버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하체가 나긋나긋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속방지턱을 제법 빠른 속도로 넘어가도 잔진동이 따라 오거나 출렁대지는 않는다.
부드럽지만 제법 과격한 코너링도 잘 버텨준다. 스티어링 휠을 회전각에 맞춰 조타한 뒤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으면 운전자가 머릿속으로 그린 선을 따라 무리없이 돌아나간다. ‘달리는 맛’을 차 만들기의 ‘최우선’으로 여기는 BMW의 신념이 차체 깊숙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시승한 차는 4륜구동인 엑스드라이브가 장착된 모델이었는데, 뒷바퀴 굴림보다 확실히 안정적인 코너링이 가능했다.
고속 주행에서의 홀딩감은 BMW답다. 안정감을 잃지 않는다. ‘좀더 빨리 달려도 되겠다’는 용기를 운전자에 심어줄 정도로 4바퀴는 도로를 잘 움켜 쥔다.
420d 그란 쿠페의 높은 고속주행안정성은 이 차가 BMW 순수 혈통임을 보여준다.
시속 100㎞보다 훨씬 빠른 속도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420d 그란 쿠페는 곁눈질을 하지 않는다. 차 머리를 달리던 방향 그대로 유지한 채 빠르게 속도가 줄어든다. 잘 달리고, 잘 멈추는 기본기는 여느 BMW 모델과 다르지 않다.
연비는 만족스럽다. 크게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와 시내 주행을 번갈아 하며 150㎞가량을 달렸다. 계기판에는 ℓ당 14.5㎞를 기록했다. 급출발, 급정거, 시속 150㎞를 넘나드는 고속주행을 하지 않으면 이보다 높은 연비를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대형 캐디백은 트렁크에 들어가기 어렵지만 뒷좌석을 접으면 넉넉하게 수납된다.뒷자리 승객을 위해 2도어 쿠페보다 헤드룸을 10㎜ 더 넓였다.
진동과 소음은 아쉬운 부분이다. 디젤엔진 특유의 거친 연소음과 배기음이 실내로 지속적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나마 흡차음재를 듬뿍 사용한 덕분에 소음은 운전자에 그다지 큰 피로감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부에서 들리는 연소음과 배기음은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래킬 정도로 컸다.
시승차는 2만3500㎞ 이상을 달린 차였다. 시승 때 엔진을 빠른 속도로 돌리고, 과격한 시프트 업다운에 시달린 탓도 있을 것이다. 사실 독일차도 단점이 있다. 대표적인 게 내구열화성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엔진을 받치는 마운트와 부시류 등은 몇년을 타면 열화돼 성능이 떨어진다. 이를 나타내는 내구열화성능이 일본차는 물론 한국차보다 떨어지는 독일차들이 많다. 가격도 6110만원으로 저렴하지는 않다.
4도어 쿠페인 그란 쿠페는 실용성을 따지는 멋쟁이들의 차다. 고연비차를 선호라지만 일반 세단은 밋밋해 성이 안차는 ‘도시남녀’들에게 BMW 420d 엑스드라이브 그란 쿠페 스포츠 라인은 대안이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