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아렉은 대중차 이미지의 폭스바겐이 동급 최강의 럭셔리차를 탄생시키겠다는 의지로 만든 대형 SUV다 .
투아렉은 서울 양재동 2차선 비포장도로에서 멈춰섰다. 서울대공원으로 봄나들이를 나온 차량의 썰물에 밀려 신호 대기가 길어진 탓이다. 지인 자제의 결혼식에 갔다가 이날이 우리 부부의 결혼 기념일임을 알았다. 저녁엔 아내와 와인이라도 한잔 할 마음으로 대형마트에 와인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비포장로는 언제 빠져 나갈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정체가 심했다. 라디오를 켰다. 투아렉은 다인오디오가 만든 스피커를 물려 놓았다. 하이엔드 스피커를 만드는 덴마크 오디오 전문 메이커다. 귀에 익은 가요가 흘렀다. ‘내 마음이 가는 그 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갈 수 없는 먼 곳이기에 그리움만 더하는 사람….’ 가수 장현의 ‘미련’.
1945년생인 그가 1972년에 발표한 노래다. 그는 2008년 세상을 떠났다. ‘기약한 날 우리 없는데, 지나간 날 그리워하네….’ 가사처럼, 건너편 야트막한 산 언덕에 구름이 머문, 금세 비라도 쏟아질 것같은 늦은 오후였다.
22주년 결혼기념일. 결혼식 때 기억이 엊그제처럼 또렷한데, 20년이 더 지나고 벌써 쉰 살이 됐다. 언제부터인지 경년 변화를 경험한다. 흰머리가 많아지고 등은 미미하지만 점점 더 구부정해진다. 노안으로 눈은 어두워지고, 비문증 같은 증세도 있다. 앉았다 일어나면서 ‘아이고’하는 소리가 자동으로 나온다. 눈물도 많아졌다. ‘국제시장’ 같은 영화를 보면 이데올리기나 작품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부터 터져 나온다.
회사는 약아빠진 집단이다. 조직원이 조금이라도 나약해졌다 판단되면 가차없이 뒷방 물림으로 쫒아낸다. 기업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50대는 주된 타깃이 된다. 눈물이 많아지고, 노안 때문에 돋보기를 끼게 되면 그를 주시한다. 자존심이 상하고 부아도 치민다.
50대는 도태되어야 할 나이인가.
그렇지 않다. 50대는 배려를 잘하는 세대다. 어떤 연령대보다 이해심이 깊다. 인간은 나이를 먹으면서 풍성해진다. 날카롭던 성정은 무뎌지고, 주변을 놀래키던 하이톤의 목소리는 나즈막해진다. 맹목적이지 않고, 사려깊고, 조금은 이타적이 된다. 5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세상의 이치를 조금은 알게 됐기 때문이다.
눈물이 많아지고, 어두워진 눈이지만 50년 경험과 삶의 지혜는 젊은이의 눈보다 밝다. 경제적인 여유도 20대와 30대보다 앞서는 당당한 50대들이 많다.
투아렉 프리미엄은 에어 서스펜션 채용으로 강력한 오프로드 주행 성능을 발휘한다.
투아렉은 ‘50대로 접어들면서 삶에 여유가 생겨난 남자’ 같은 차다. 연령대는 다르지만, 늘 푸근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영화배우 안성기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전면부 라디에이터그릴과 범퍼에서는 정직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화려하지 않지만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다. 측면부는 배려심의 상징이다. 직선이 없다. 날카롭거나 앙칼지지 않다. 볼륨감 넘치는 보디라인이 앞펜더부터 뒷펜더까지 이어진다.
실내 디자인은 헌팅캡에 세퍼레이트 수트(콤비 수트)를 잘 차려입은 신사 같다. 크게 멋을 부리지 않았지만 품위와 절제미가 있다. 골프나 파사트 같은 폭스바겐 대중차 인테리어와 차원이 다르다. 형태적인 만족감은 물론 촉감에도 공을 들였다. 각종 스위치류는 정밀한 밀링 가공을 통해 터치 시의 감촉과 그립감을 개선했다고 한다.
투아렉은 20대와 30대를 닮은 스포츠카는 아니다. 계열사인 포르쉐 카이엔과 플랫폼을 공유하지만 성정이 완전히 다르다. 카이엔은 SUV 형태를 지닌 스포츠카다. 100m 트랙에서 스타트 신호를 기다리는 20대 단거리 육상선수 같은 차다. 투아렉은 이를 느긋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이전 기록보유자랄까.
엔진음은 바리톤 보다는 테너 음색에 가깝다. 실내에서 들리는 소음은 적당한 편이다. 디젤치고는 소음이 적다는 칭찬을 받을 만하다. 운전자와 엔진을 단절시켜 버리는 것같은 국산 디젤차와는 다른 흡차음 방식이다. 투아렉은 외부에서도 디젤엔진 소음이 크지 않다. 세단 페이튼처럼, 럭셔리 SUV를 지향한 폭스바겐의 의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가속페달은 무거운 편이다. 카이엔처럼 살짝만 건드려도 튀어나가지는 않는다. 액셀러레이터의 초반 응답성은 진지하다. 2967㏄ 6기통 터보 디젤엔진은 토크 56.1㎏·m, 245마력의 힘을 낸다. 적지 않은 토크지만 2.3t이나 되는 큰 몸집 탓에 제법 ‘웅웅’ 소리를 낸 뒤에야 차가 움직인다. 하지만 이어지는 움직임은 오거스타골프클럽 샌드트랩의 모래알처럼 매끄럽다. 1단과 2단 등 저속기어에서 움찔거리거나 꿀렁거림이 없다.
시트 메모리 스위치, 사이드 미러 조절 버튼, 서스펜션 높이 조절 스위치 등 투아렉의 버튼과 스위치류는 직관적이고 고급스럽게 디자인됐으며, 기능성도 높다.
액셀러레이터를 좀더 강하게 밟아보면 이 진지한 대형 SUV의 속내를 알 수 있다. 요트가 바람을 받아 바다를 질주하듯 속도계 바늘은 잠깐 사이에 3시 방향에 가있다. 투아렉의 시속 100㎞ 도달 시간은 7.6초다. 안전 최고속도는 시속 220㎞인데, 이 속도를 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복합 연비는 ℓ당 10.9㎞다. 디젤엔진이지만 3ℓ로 배기량이 적잖은 탓이다. 아주 빠른 속도와 스포츠 모드로 350㎞를 주행한 뒤 확인한 연비는 9.8㎞였다.
힐베이스가 3m에 가까운 차인 만큼 몸놀림이 가볍지만은 않다. 하지만 단점을 압도하는 장점이 있다. 주행감이 묵직하고 푸근하다. 아주 빠른 속도에서도 날리지 않고 진중하게 달려준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19일 중부내륙고속도로 빗길에서도 투아렉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운전대로 4바퀴가 도로를 강하게 쥐고 달린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고속 주행 때의 와이퍼 움직임은 인상적이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릴 때도 와이퍼가 유리를 닦는 속도에 큰 변화가 없다. 일반적으로 고속에서 와이퍼는 유리창을 닦은 뒤 내려갈 때 바람의 저항으로 속도가 느려진다. 투아렉 와이퍼는 바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와이퍼 레인 센싱 기능도 칭찬받을 만하다. 비가 많이 오면 빨리, 덜 오면 느리게 움직였다. 터널을 통과할 때도 한두차례 움직이다 멈췄다. 비가 많이 와도 꿈쩍하지 않고, 그쳐도 와이퍼를 계속 돌리면서 윈드실드 상단을 커다랗게 가리고 있는 국산 센서와 달랐다.
투아렉은 저속에서 스티어링 휠을 소형 SUV나 세단보다 많이 돌려야 차 머리가 돌아간다. 대형 SUV의 특징이다. 스포츠 세단을 몰았던 운전자들은 조금 답답할 듯하다. 그러나 한두 시간만 운전하게 되면 금세 익숙해진다.
시속 100㎞가 넘는 고속에서 투아렉 운전대는 진중해진다. 과거 국산차의 고속에서 스티어링 휠 감각을 ‘허공에 노젖는 듯하다’고 표현하는 전문가들이 더러 있었다. 노젖기에 비유하면, 투아렉은 바다나 강에서 노를 젖는 것처럼 묵직하다. 물살의 밀도감, 세기, 방향 같은 세밀한 정보를 노를 통해 알 수 있듯, 노면의 다양한 정보가 스티어링 휠에 전달된다.
투아렉은 서스펜션 모드를 ‘일반’에 놓으면 웬만한 오프로드는 주행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지상고를 갖고 있다.
투아렉은 노면과 싸우지 않는다. 포용하고 보듬는다. 과속방지턱, 파인 도로, 교량의 단차를 투아렉처럼 부드럽게 통과하는 차량은 보기 드물다. ‘과속 방지턱을 넘기 위해 만들어진 차’란 생각이 들 정도다.
시승한 프리미엄 트림에는 에어 서스펜션이 달린다. 주행 높이 조절기능과 전자식 댐퍼 컨트롤로 요철처럼 고르지 않은 노면에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케 하는 것이다. 속도 감응식 차고 조절 기능은 고르지 못한 노면에서도 안정된 주행을 할 수 있게 한다. 운전자가 ‘노멀’이나 ‘콤포트’ ‘스포츠’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콤포트 모드에서는 노면의 울퉁불퉁함을 상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상태로 바뀌고, 스포츠 모드에서는 주행 높이가 25㎜ 낮아져 고속주행안정성을 높여준다.
다중충돌방지 브레이크, 어탭티브 크루즈 컨트롤, 에어리어 뷰, 사이드 어스시트, 피로경보시스템 등 럭셔리차에 있을 법한 안전·편의 장치는 얼추 있다. 가격은 3.0 TDI 블루모션 7720만원, 시승한 프리미엄은 8670만원이다. 이보다 고급 트림인 R라인은 9750만원으로 1억원에 가깝다.
대중차 이미지가 강한 폭스바겐 브랜드치고는 차값이 비싸다는 평가도 있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하지만 투아렉을 직접 타본 뒤에는 이런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좋은 의미에서, 브랜드 가치와 차의 성능이 비례하지 않는 차가 있는데, 투아렉이 그런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