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R nine T를 다시 탔다. BMW 최초의 모터사이클 R32 탄생 90주년 기념 오브제다. 멋모르고 탔던 처음에 비하면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렇지만 거칠고 포악하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와인딩 시에는 강력하지만 부드럽다. 라이더의 의지를 거스르지 않는다. 돌아가는 방향으로 핸들을 지그시 누르면 원하는 만큼 눕힐 수도 있고 마음먹은 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
프론트 서스펜션은 텔레스코픽 방식의 46㎜ 도립식 포크, 리어는 BMW 모토라드 전통의 패러레버를 장착했다. 프론트는 최적의 주행 감각을 선사하고 리어는 우수한 주행 안정성을 제공하며 동력손실이 적다.
야간 라이딩이다. 슈퍼문은 아니지만 보름달이 내 등 뒤로 따라온다. 달빛아래 달리는 기분도 쏠쏠하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보면 하루 동안 묵었던 스트레스가 절로 풀린다.
1170㏄ 공유랭식 4스트로크 수평대향 2기통, 일명 박서엔진은 고속회전에 유리한 엔진이다. 무게중심도 낮아지기 때문에 코너링에도 강한 면모를 보인다.
레트로(복고)한 디자인의 R nine T는 심플한 계기반 외에는 달리 치장한 것은 별로 없다. 원형 헤드라이트와 스포크 휠, 짧은 프론트 휀더 등만 봐도 클래식하다.
철저한 기능위주의 BMW 다른 기종의 모터사이클에 비하면 ‘골동품’같은 필이 풍긴다. 화려함을 배제한 심플 디자인이지만 오히려 시선을 끈다. 감성에 터치하기엔 복고만큼 확실한 무기는 없어 보인다.
커스텀하기도 제격이다. BMW R nine T는 엔진을 감싸고 있는 파이프 프레임이 각각 4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 모듈러 프레임 콘셉트가 특징이다. 변형 및 제거가 가능하다. 또한 ABS와 ECU를 제외한 전자 장비를 최소화해 자유롭게 커스텀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지금도 그다지 능숙한 라이더는 아니지만 초보시절 접했던 알듯 모를 듯한 감동이 이제는 명확해진다. 묵직한 엔진 음과 고동감은 좋은 모터사이클이 결국 소리로 귀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로틀을 거칠게 비틀어 본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거친 바람의 저항을 뚫고 달리는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느끼는 쾌감이다. 얼굴은 일그러져도 관성의 법칙에 강력하게 저항하며 극복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앞서 달리던 차량들 꽁무니가 갑자기 붉게 물든다. 덩달아 브레이크 레버를 움켜쥔다. 늘 느낀 거지만 BMW 모터사이클의 ABS 성능은 예술이다. 프론트와 리어브레이크를 동시에 급하게 잡아도 슬립하지 않고 칼같이 정지한다.
ABS가 장착되지 않은 모터사이클에서는 급정거 시 뒷바퀴가 미끄러지는 슬립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당황하면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행이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심장이 쫄깃해진다. 진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프론트 브레이크는 320㎜ 더블디스크와 브램보사의 모노블록 캘리퍼로 구성 됐다. 리어 브레이크는 265㎜ 싱글디스크다. 안정적이면서 확실한 제동력을 보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던가. 그저 소장하며 바라만 봐도 좋을 레트로 바이크지만 도로로 나서는 순간 흐뭇함이 배가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