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주침의 정치…앤디 메리필드 지음·김병화 옮김 | 이후 | 364쪽 | 1만9000원
![[책과 삶]‘점령하라’ ‘아랍의 봄’… 도시적 모순 시대서 분출된 새로운 저항](https://img.khan.co.kr/news/2015/05/29/l_2015053001004191600357701.jpg)
저자는 우리가 사는 공간을 아시모프의 공상과학소설 속 행성 도시에 비유한다. 행성 도시는 먼 미래에 외계 행성에 세운 도시로 수백억명이 질서정연하게 거주한다. 그 도시에는 계급의식을 낳는 노동의 세계가 없다. 거주자는 언제 어디든 옮겨다닐 수 있지만 서로 파편화돼 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는 행성 도시를 닮았다.
우리는 이제 산업적 모순 시대를 지나 도시적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저자는 도시의 폭발적 성장은 불균등한 발전과 시민의 파편화를 낳았는데, 도시가 커질수록 시민성, 사회성은 허물어진다고 진단한다. 또한 자본의 국경이 없어진 시대에 고정된 노동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 도시로 이주하지만 이제 그곳에 일자리는 없다.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를 못 찾는 젊은 세대. 이들은 파편화돼 흩어진 채 살아간다. 서로 스쳐지나갈 뿐 ‘마주침’을 상실한 채 살아간다.
이런 도시적 사회에서 변화와 혁명의 계기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디서 비롯되는가. 저자는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이 문제를 다룬다. 공장이 아니라 도시라는 공간 개념을 토대로 자본주의 사회를 해부한 선구자는 앙리 르페브르다. 저자는 르페브르의 관점을 수용해 한발 더 내딛는다. 바로 르페브르 시대에는 없던 인터넷,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환경이다. 이제 마주침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상에서 주로 이뤄진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점령하라 운동, 아랍의 봄,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불특정 대중이 한데 모이고 연대해 변화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도시적 사회에서 변화가 분출되는 새로운 양상이며, 마주침의 정치가 작동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홍콩 우산혁명도 이에 속할 것이다.
마주침이란 공간을 장악하고, 흐름을 주도하는 행위이다. 도시적 사회에서 시민적 공간을 확보하는 행위이다. 점령하라 운동의 핵심은 ‘시민이 되고 싶다’는 욕망의 표출이었고, 주코티 공원이나 타흐리르 광장은 시민의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부여받았다. 21세기판 파리 코뮌인 셈이다. 도시적 사회에서 변화는 산업현장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 이제 자본에 짓눌리거나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서로 마주쳐서 변화의 공간을 확보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