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선
인구 2300만명의 대만은 원자력발전소 6기를 가동하고 있다. 진산과 궈성, 마안산 3곳에서 각각 2기씩 운영 중이다. 대만 정부는 북부 궁랴오 지역에 2000년부터 제4원전 2기를 추가로 짓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시민 20여만명이 새벽까지 거리시위에 나서는 등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공정률 98%에 이르던 원전 건설은 중단됐다.
제4원전은 수도 타이베이에서 차로 불과 50분 거리에 있다. 안개가 잔뜩 낀 궁랴오 지역은 한국의 원전지역과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한적한 바닷가 어촌마을이다. 반대운동을 이끌어온 주민 대표는 “공사가 시작된 뒤 해안 모래가 유실되는 등 환경 변화가 일어났다. 정부와 대만전력은 보상금으로 지역 주민을 갈라놓았고 공동체는 무너졌다”고 말했다.
녹색공민행동의 훙션한 부비서장은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제4원전이 문제투성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대중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을 비롯해 학생과 시민들이 반대집회에 적극 나서자 정부가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만의 탈핵운동은 원전 건설 중단에 그치지 않고 에너지 전환 운동 단계로 진입했다. 전력소비량이 급증하면 원전 추진파들이 제4원전 가동을 주장할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탈핵’을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활동가들은 올 초 서울을 2차례 방문해 서울시가 추진 중인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조사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원전 1기분의 전력을 줄인 수요관리 정책이 대만에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만의 언론들이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대만 정부도 에너지 절감 지원에 나섰다. 경제국이 20억대만달러(약 722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19개 지자체가 에너지 절약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도록 했다.
시민사회는 정부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22일 ‘지역에너지 전환 훈련 워크숍’을 개최했다. 전국에서 모인 60여명의 탈핵운동가들이 지역 에너지 전환정책과 원전 하나 줄이기를 주제로 장장 8시간에 걸쳐 발표와 토론을 했다. 활동가들은 워크숍에서 19개 지자체가 발표할 절약 계획안을 비교·분석하는 한편 지역 에너지 조례 제정운동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제4원전의 건설 중단은 한국으로 치면 운영 승인 심사를 앞둔 신고리 3호기를 중단시킨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고리 1호기 수명연장 반대 여론은 높지만 신고리 3호기 반대 여론은 상대적으로 잠잠하다. 대만 활동가들에게 “대도시인 부산에 현재 원전 6기가 가동 중이고, 앞으로 6기를 추가 건설해 모두 12기가 될 예정”이라고 한국 상황을 전하자 모두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한국이 처한 심각성을 더 실감했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