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어떻게 거짓 자백을 하게 될까

서영찬 기자

▲ 전락자백…우치다 히로후미 외 지음·김인회 외 옮김 | 뿌리와이파리 | 342쪽 | 1만8000원

[책과 삶]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어떻게 거짓 자백을 하게 될까

무고한 시민이 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는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서로 끌려오고, 취조실에 감금되다시피 한 채 수사관과 마주한다. 용의자는 알리바이가 없지만 범행을 완강히 부인한다. 울부짖으며 바깥과의 접촉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고문은 없지만 위압적이고 때로는 온화한 취조가 이어진다. 계속 부인하면 더 심한 처벌을 받을 거라는 협박도 듣게 된다. 장기간 외부와 격리된 취조실에서 용의자는 정신적 굴욕감을 느끼고 서서히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다. 자기통제감을 잃게 된 용의자는 끝내 “그래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죄송’이라는 단어는 곧 범행 자백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 법학자와 변호사들이 4가지 형사 사건을 통해 밝혀낸 ‘거짓자백’의 과정은 대체로 이와 같다. 왜 하지도 않은 범죄를 자신이 저질렀다고 거짓으로 자백할까. 책은 이 같은 의문을 파헤치며 일본 형사절차의 문제점을 짚어낸다. 거짓자백이 발생하는 원인은 수사관의 자질, 실수가 아니라 그릇된 취조·공판 방식임을 증명한다.

이채로운 점은 용의자와 취조 담당 수사관의 관계이다. 책은 용의자·취조관 관계가 부자 관계와 흡사하다고 말한다. 압박과 달래기, 공감 등 냉온탕을 오가는 수사관의 취조 행위는 권위적인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취조가 진행되면서 용의자는 수사관의 권위에 짓눌리기도 하지만 감정적으로 수사관에게 의탁하고 결국 따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용의자가 “죄송하다”고 말하는 행위도 이 같은 부자 관계라는 관점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렵지 않다고 한다.

거짓자백 사례를 보면 가족 요인이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다. 경찰 측의 말만 믿은 가족이 용의자에게 빨리 자백하고 가벼운 처벌을 받으라고 설득하는 경우다. 이때 용의자는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당할 처지에 놓였다는 심리적 압박을 이겨내지 못해 거짓으로 자백한다. 이는 개인의 행동과 윤리 기준을 이에(家)에 두는 일본 사회의 고유한 특성에 기인한 바 크다고 한다.

가족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측면에서 거짓자백은 전향과 닮았다. 태평양전쟁 시기 무수한 사회주의자가 감옥에서 전향서를 쓰고 군국주의에 동조했는데, 이들을 전향으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은 가족이었다. 가족이 해체될 가능성, 가족으로부터 배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상성을 압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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