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무력해진 ‘1965체제’ 넘어…“국제정세 따른 새 패러다임 짜자”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갈등·혐오 극복하고 ‘미래로 가는 길’

일제의 35년간 한국 강점이라는 아픈 과거를 딛고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22일로 50년째를 맞았지만 여전히 한·일관계는 애증이 교차하고 있다. 특히 현재 양국관계는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최악으로 평가받는다. 한·일관계 근간이던 이른바 ‘1965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1965년 체제의 ‘갈등 봉합’ 기능

1965년 한·일 협정을 통한 국교정상화는 양국의 상호의존성이 작용하면서 성립됐다. 한국은 일본과 외교적·경제적 협력이 절실히 필요했고, 일본은 공산세력과의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와 경제적 시장으로서 한국을 필요로 했다.

1965년 체제가 과거사 청산에 미흡한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지난 50년간 양국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갈등을 적절한 수준에서 억제하려는 메커니즘이 사안에 따라 적절히 작동했기 때문이다.

1965년 12월18일 이동원 외무장관(왼쪽)과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상(왼쪽 두번째)이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열린 한·일 협정 조인식에서 문서를 교환하고 있다.

1965년 12월18일 이동원 외무장관(왼쪽)과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상(왼쪽 두번째)이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열린 한·일 협정 조인식에서 문서를 교환하고 있다.

실제 역대 정부는 갈등이 표출될 때마다 조기 봉합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박정희 정권은 김대중 납치사건(1973년)과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1974년) 등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마다 안보·경제적 측면의 부정적 요소들을 감안해 조기 수습에 적극 나섰다. 전두환 정부 역시 군부독재라는 체제 약점 극복과 안보경협 타결을 위해 대일외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98년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연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역시 외환위기 극복과 햇볕정책 추진에서 일본 협력을 필요로 한 김대중 정부의 적극적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21일 일본 도쿄 외무성 이이쿠라 공관에서 만나 한·일외교장관 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21일 일본 도쿄 외무성 이이쿠라 공관에서 만나 한·일외교장관 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 향한 새 패러다임 필요하다

국제정세와 국내 상황 변화로 지금 한·일관계는 새로운 양상을 맞고 있다.

냉전 종식으로 한·일의 안보연대 의식이 약화되고 한국의 비약적 경제성장으로 양국 간 격차가 줄어들었다. 또 한국에는 일본보다 중국이 안보·경제적으로 중요한 국가가 됐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의 견제를 촉발하고 일본 우경화를 촉진시켰다. 이에 따라 한국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의 결속을 요구받게 되고 그 여파가 한·일관계에까지 미치는 양상이다.

이 같은 국제정세 변화로 한·일은 모두 상대국에 대한 국내 인식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민족주의적 감정이 다시 살아나고 양국관계가 합리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분위기에 좌우되는 경향이 짙다. 양국 정부 자세도 경직되면서 한·일관계에 호의적인 중도세력의 목소리가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1965년 체제’로는 더 이상 한·일관계의 미래를 유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한·일관계는 변화된 국내외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지향점과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다. 일본과 적절한 수준의 안보협력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수평적·협력적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또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일본의 지지도 필요하다.

일본전문가인 조세영 동서대 교수는 “국제정세와 국내 정치적 상황이 변했다고 해도 한·일은 여전히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국민적 상호이해와 민간교류 확대, 따질 것은 따지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태도 등으로 양국 갈등을 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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