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쿡방 시대 단상](https://img.khan.co.kr/news/2015/07/12/l_2015071301001796600156182.jpg)
“으~~음,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가 있죠?” 게스트는 입속의 혀를 굴리며 화면 속에서 눈을 감았다 살짝 뜬다. 그리고 아직 음식을 다 삼키지도 않은 채 찬사를 보낸다. 순간 잘생긴 셰프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미소가 번진다. 요즘 전 국민을 요리사랑에 푹 빠지게 한 ‘쿡방(요리방송)’의 한 장면이다.
대한민국이 쿡방에 점령당했다. 어디를 가든 쿡방 뒷얘기로 설왕설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실시간으로 소감과 비판이 이어지고 쿡방 레시피대로 요리를 한 사람들의 댓글이 줄을 잇는다.
음식은 인류의 영원한 주제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먹거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 인류 4대 문명 발상지가 먹거리가 풍부한 강가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먹거리 확보는 많은 전쟁을 낳았고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역사로 이어졌다.
이 같은 음식에 대한 관심은 우리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불행히도 한 시절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다. 산간지대로 이뤄진 국토의 특성상 곡식은 부족했고 수시로 침탈해 오는 외적은 산하대지를 유린했다.
이런 허기짐은 부모를 산속에 내다 버릴 수밖에 없었던 ‘고려장’이나 ‘보릿고개’, ‘꿀꿀이죽’ 등 아픈 단어 속에 녹아들어 있다.
우리가 배고픔에서 벗어난 시기는 아마도 1980년대 들어서일 것이다. 산업사회로의 급속한 진입은 생활의 여유를 가져왔다. 이때에서야 전 국민이 그나마 삼시세끼를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됐다. 또 ‘덩어리 고기(등심, 안심, 삼겹살 등)’를 먹을 수 있게 된 신세대가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더불어 배고팠던 시절의 허기짐을 보상받으려는 갈망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갈망이 처음 표출된 것이 바로 ‘가든 문화’다. 불고기가 주메뉴였던 가든 식당은 누구나 한번쯤 들러보고 싶어했다. 전국에는 ○○가든이란 커다란 입간판이 속속 세워졌다. 이런 먹자풍조에 주목한 것은 언론이었다. 신문과 방송은 앞다퉈 유명식당들을 소개했다.
언론의 먹거리 노출은 과거 허기짐을 달래고 보상받으려던 한국인의 심리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신문은 대문짝만 한 음식점 전경과 식당 안, 그릇에 담긴 요리 사진을 컬러면에 집중 배치해 입맛을 자극했다.
방송은 한술 더 떴다. 아예 카메라를 들고 유명식당 주방을 뒤져 비법 찾아내기에 골몰했다. 당시 유행했던 말이 “더 이상은 안된다. 여기까지다”라는 비법공개를 거부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일갈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런 낯선 풍경에 주뼛거렸다. 카메라가 다가오면 고개를 돌리거나 손사래를 치면서 주저했다.
그것은 음식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그래서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며, 먹는 데도 법도를 지켜야 한다는 ‘신성성’의 잔재였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카메라 앞에서 “끝내줍니다” “옛날 시골 어머니가 해주시던 바로 그 맛입니데이”를 연발하며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동시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2015년, 전혀 새로운 차원의 음식방송이 등장했다. 사실 과거 음식방송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한 코너였다. 주말 나들이나 가족외식을 위한 정보제공 성격이 강했다. 음식과 더불어 식당의 내력, 주인의 삶 등 음식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전달됐다. 하지만 쿡방은 오직 음식에 대한, 음식을 위한, 음식의 방송이다. 게다가 음식을 가지고 장난친다고 하면 좀 과할지 몰라도 너무 세밀하고, 자극적이고, 장식적이다. 음식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음식을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음미가 아니라 탐닉 수준이다. 또 쿡방은 음식을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오락화하고, 승부욕을 자극시키며 게임화했다. 예전 우리에게 그나마 남아있던 음식에 대한 경건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간대 불문, 방송사 불문, 주제 불문의 쿡방에 몰입해 화면 앞을 떠날 줄 모른다. 이제 우리 삶에서 허기짐은 많이 가셨다. 살 만큼 살아가고 있고 진수성찬은 아니어도 삼시세끼 밥 못먹는 사람도 없다. 물론 인간이 경계해야 할 오욕 중 첫번째가 식탐이랄 만큼 참아내기가 힘들다지만 이젠 좀 떨쳐내자. 언제까지 먹는 것에 이리도 집착할 것인가.
“이 음식은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하기 전에 외우는 공양게다. 아직도 먹는 것에 껄떡이는 이 시대에, 한번쯤 되새겨야 할 경구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