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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사법개혁 박차, ‘감옥국가 미국’ 이젠 바뀔까

  • 장은교 기자

‘더 많이 더 오래 가둘수록 더 안전해진다.’ 지난 20년동안 미국의 사법체계는 이 명제에 의존했다. 더 오래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둘수록 시민들은 안전해지고 범죄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양형기준을 높이고 징역살이를 의무로 부과하는 비중도 늘리면서 미국의 감옥은 점점 더 붐비게 됐다. 2015년 현재 재소자 220만명.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있는 나라가 된 미국은 지금 가장 안전한 나라일까.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 형법을 상징해온 ‘대량 투옥(mass incarceration)’ 원칙을 흔들기 시작했다.

■반성하는 클린턴

“인정합니다. 나는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연례회의에 참석해 21년 전 자신이 통과시킨 정책이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그가 언급한 정책은 이른바 ‘삼진아웃제’로 불리는 형법안이다. 이 법은 한 사람이 세 번 이상 유죄평결을 받으면 무기징역을 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비폭력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유죄전과가 3번이 되면 무기징역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법안을 통과시킬 당시에는 범죄율이 높았고 치안을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였다”며 “그 정책 이후로 범죄발생율이 떨어지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법은 좋은 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까지도 너무 오래 교도소에서 인생을 보내게 됐다”며 “나는 그때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뉴스 깊이보기]오바마 사법개혁 박차, ‘감옥국가 미국’ 이젠 바뀔까

대량투옥 원칙은 197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미국을 ‘감옥 부자’로 만든 결정적 계기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도입한 삼진아웃제였다. 클린턴 재임 초기 약 110만명이었던 재소자 수는 20년이 지난 지금 두배 이상 늘었다. 국제교정연구소(ICPS·International Centre for Prison studies)에 따르면 미국의 재소자 수는 221만7000명으로 전세계 1위다. 165만7812명을 가두고 있는 2위 중국을 크게 압도하는 수치다. 이란(22만5624명), 파키스탄(7만4944명), 사우디아라비아(4만7000명)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은 수치다. 미국이 늘 비교대상으로 삼는 영국은 8만5743명, 독일은 6만1872명으로 조사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4일 “유럽 35개국의 재소자 수를 합친 것보다도 미국 재소자 수가 더 많다”고 밝혔다.

재소자는 많아졌지만 지난 10년간 미국에서는 대량투옥이 범죄예방에 거의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연이어 발표됐다. 재소자가 늘어나면서 미국은 교도소 운영비로만 매년 800억 달러(91조원)가 쓰이지만 범죄발생률은 줄지 않고 있다. 특히 출소자의 60%가 다시 죄를 짓는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교도소가 ‘격리’만 할뿐 아무런 교정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교도소 들어간 오바마

클린턴 전 대통령이 공개반성을 한 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연방교도소를 방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죄수 1300여명을 수용하고 있는 오클라호마주의 엘리노 연방교소도를 찾아 비폭력마약사범 6명과 45분동안 직접 대화를 나눴다. 이어 ‘123호’라고 번호가 붙여진 한 독방에도 직접 들어갔다. 지난 14일 그가 NAACP연설에서 “그 작은 공간에 한 사람을 23시간동안 가둔다고 해서 우리가 더 안전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던 바로 그 작은 공간이었다.
독방에서 나온 그는 취재진 앞에 서서 자신의 과거를 언급하며 교정시스템 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이곳에 와서 6명의 재소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젊은 날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내가 저지른 잘못을 만회할만한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고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 회고록에서 자신이 젊었을 때 마리화나와 코카인에 손댄 적이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젊은이들이 한때 실수를 하는 것은 전세계 어디서나 일어나는 평범한 일이지만 미국만 유독 그런 젊은이들을 다 잡아 가두는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두번째 기회를 주는 나라”라며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미국 시민이고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16일 오클라호마주 엘리노 연방교도소를 찾은 버락 오마바 대통령이 123호 독방에 들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16일 오클라호마주 엘리노 연방교도소를 찾은 버락 오마바 대통령이 123호 독방에 들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사법개혁은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말 역점과제로 꼽힌다. 올해 초 신년국정연설에서 이미 사법개혁추진을 시사한 오바마 대통령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있다. 지난 13일 오바마 대통령은 비폭력마약범죄로 수감된 46명의 감형을 결정했다. 47명 중 14명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들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비폭력범죄라도 마약사범은 모두 징역을 살게 하는 의무형량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연방교도국( Federal Bureau of Prisons)에 따르면 미국 연방교도소의 48%가 마약사범이다.
그는 살인, 강도 등 중범죄 처벌은 강화하되 비교적 가벼운 범죄에 대한 처벌기준은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범죄예방을 위해 우범지대와 빈민가에 사는 아이들과 가난한 소수인종 아이들의 교육에 투자하자고 강조했다. 전과자들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안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연방교도소 수감자 중 37%는 흑인, 34%는 히스패닉인데 미국은 형기를 마치더라도 투표권을 행사하는데 제약이 많아 사실상 선거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수감자 중에 유색인종이 많다는 것은 곧 이들의 정치적 권리도 제한된다는 뜻이다.
오바마의 사법개혁방안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있지만, 처벌·투옥 위주의 현행 사법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데는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동의하고 있다. 특히 상원 법사위원장인 척 그래슬리 공화당 의원과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랜드 폴 캔터키 상원의원도 사법개혁에 적극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무형량제도’를 올해말까지 수정해줄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오바마 행정부에 시작한 사법개혁안은 2016년 미 대선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고치려는 엄벌주의 강화하는 한국

한국의 사법체계는 미국과는 다른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이 지난 20년동안 엄벌주의의 폐해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은 점점 더 형량을 높이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지난 5년간 거의 모든 범죄의 형량이 높아졌다.
양형기준을 논의하고 정하는 법원과 검찰은 ‘법과 정의에 입각한 엄정한 법집행’을 원칙으로 큰 범죄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한다. ‘어떤 죄를 지어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재벌회장님용 맞춤형 판결이 있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관대했던 선고 ‘풍습’이 최근 몇년간 예외없는 실형을 선고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원래 법대로 했어야 할 판결을 일부 특권층에게 이제서야 법대로 판결하게 된 것 외에 처벌과 교정, 범죄예방을 위한 뚜렷한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특히 기소독점권을 쥐고 있는 검찰은 최근 몇년간 구속률을 높이는 ‘삼진아웃제’를 일반 형사사건에 도입했다.
대검찰청이 201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폭력사범 삼진아웃제’는 폭력범죄 전과자가 3년 이내에 2번 이상 다시 폭력범죄를 저지를 경우 구속기소를 원칙으로 한다. 멱살을 잡는 등 사소해보이는 폭력이라도 두번 이상 쌓이면 구속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무집행방해사범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 정복을 입은 공무원의 멱살만 잡아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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