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한 명의 프로야구 감독이 있다. ‘야신(野神·야구의 신)’으로 불린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다. 가쓰라고교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건너와 기업은행 야구단 창단 멤버가 됐다. 좌완투수였던 그는 노히트노런, 시즌 20승의 기록을 갖고 있다. 국가대표 투수로 1961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선수 시절은 짧았다. 28세 때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혹사에 따른 어깨 부상 때문이었다.
지도자로 변신한 이후 고교 야구부와 실업팀을 거쳐 프로야구(태평양·삼성·쌍방울·LG·SK) 감독을 지냈다. 칠순의 나이에 맡은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 헬스 트레이너, 택배기사 등이 프로진출을 꿈꾸며 모인 ‘외인구단’이었다. 포기와 좌절에 익숙해진 ‘B급 선수’들에게 ‘지옥의 펑고’ 훈련을 시켰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배트를 휘두르게 했다. 때론 욕도 하고, 때론 불같이 화도 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듯한 ‘독종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는 ‘B급 선수’들의 눈물과 한숨, 실패와 좌절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들을 위해 울 수 있는 감독이다. 지난해 9월 해체된 고양 원더스는 3년간 90승25무61패, 프로구단 31명 입단이란 성과를 남겼다.
다큐영화 <파울볼>에서 그는 “인생이 시행착오의 연속인 것처럼 파울볼도 다음 기회를 만들기 위한 실수 또는 실패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그는 한화이글스 감독 유니폼을 입었다. 만년 꼴찌팀을 ‘마리한화’로 바꿔놨다. 올시즌 한화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8차례의 역전승이 말해준다. 한화는 전반기 44승39패로 5위에 올라 ‘가을야구’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메모광’이다. 수첩에 선수 기록, 경기 일정, 심판 성향 등을 깨알같이 적는다. 수첩을 토대로 라인업과 전략을 짠다. 선수들은 이름값이 아닌 실력으로 판단한다. 40줄에 들어선 박정진과 권용관, 고양 원더스에서 가르친 20대 송주호와 신성현을 꾸준히 기용한다. 그는 사과에 인색하지 않다. 최진행의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자 “이런 일이 일어난 것 자체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난 20일 ‘야구와 조직 리더십’ 강연에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하면 리더가 될 자격이 없다. 리더가 바람(역경)을 피하면 그 바람은 아랫사람과 조직으로 향한다”고 했다. 프로야구 판도를 흔들고 있는 그는, 73세의 김성근 감독이다.
# 여기 한 명의 대통령이 있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린다. 아버지의 대통령 취임으로 11세 때부터 청와대에서 생활했다. 어머니의 피격 사망으로 5년간 ‘영부인 직무’를 대행했다. 1979년 아버지가 서거하자 16년 넘게 살던 청와대에서 나왔다. 27세 때였다. 오랜 청와대 생활로 서민들의 눈물과 한숨, 실패와 좌절을 제대로 알 리 없었다. 46세 때 의원 배지를 처음 달았다. 정계에 입문한 뒤 그는 야구로 치면 패색이 짙은 경기에 등판해 극적인 승리를 따내는 구원투수와도 같았다. 2004년 ‘차떼기 사건’으로 한나라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당 대표를 맡아 치른 17대 총선(121석)에서 선전했고,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치른 19대 총선(152석)에서 야당에 승리했다. 18대 대선에서도 51.6%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대통령이 된 이후 그는 ‘독선’ ‘불통’ ‘무책임’의 최고통치자란 이미지가 강해졌다. 약속도 쉽게 저버렸다.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등 대선공약을 1년도 안돼 ‘선거용 공약(空約)’으로 만들었다. 그는 ‘깨알 메모’를 즐겨 한다. 인사는 검증 없이 수첩에 적혀 있는 대로 했다. 그러다 김용준·문창극·안대희 등 총리 후보자와 김종훈·김병관 등 장관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하는 인사 참사를 초래했다. 실력이 아닌 이름값으로 한 인사는 ‘올드보이의 귀환’ ‘돌려막기 폐해’를 불렀다.
사과에도 인색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성완종 리스트 파문 때도, 메르스 사태 때도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다. 수세에 몰리면 총리나 장관에게 대리 사과토록 했다. 책임져야 할 때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국민 탓’ ‘남 탓’을 했다. 정부·여당에 불리한 사건이 터지면 침묵하거나 ‘물타기’를 시도했다.
‘독한 정치’를 하는 그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알라들” 발언으로 심기를 건드리고, 정부 정책을 비판했던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를 했다며 찍어냈다. ‘눈엣가시’와도 같은 상대팀 강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빈볼’을 던진 투수와 다를 바 없다. 그는 임기의 절반을 채웠다. 한때 60%에 이르던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다. 국민을 이기려 하고,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바람을 피하려 했던 그는, 63세의 박근혜 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