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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

입력 2015.08.19 20:43

수정 2015.08.1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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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성 논설위원
[정동에서]복수는 나의 것

복수는 힘이 있다. 복수의 결의를 다지는 순간 투지를 불타오르게 만든다. 절치부심, 와신상담, 칼을 가는 동안 초인적인 능력이 쏟아져 나온다.

“아버지의 원수와는 하늘을 함께 이고 살지 않고/ 형제의 원수를 만나면 무기를 되돌리지 않으며/ 친구의 원수와는 한 나라에 살지 않는다.”(<예기>의 곡례 편)

불구대천의 원수에겐 내가 살든, 네가 살든 하나의 선택밖에 없다. 막다른 골목이다. 누군가 하나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끝나는 싸움이다. 복수의 끝은 무엇일까. 중국 춘추시대 복수의 화신이라 불리는 사내가 있었다. 이름은 오자서. 초나라 사람으로 합려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한 인물이다. 그는 초나라 평왕에게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초나라를 버리고 오나라로 갔고 일등공신이 되자 자신의 포원을 실행에 옮겼다. 평왕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수백번 채찍질을 하며 아버지와 형을 대신해 분풀이를 한 것이다.

그러나 오자서도 운명의 화살을 비껴가지 못했다. 합려의 아들 부차가 왕에 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오자서는 월나라가 오나라를 침략해 올 것이라며 대비책을 마련할 것을 왕에게 간언했지만 오히려 가신들의 모함으로 자결 명령을 받는 처지가 됐다.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목재로 쓰도록 하라. 아울러 내 눈을 빼내 오나라 동문에 매달아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멸망시키는 것을 똑똑히 보게 하라.” 그리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이에 화가 난 왕은 오자서를 말가죽 자루에 넣어 강물에 던졌다. 부차가 승자처럼 보였지만 일순간이었다. 부차도 무사하지 못했다. 오자서가 간언한 대로 오나라는 월나라의 말발굽 아래에 짓밟혔다. 부차도 월나라 칼에 목이 땅에 떨어졌다. 죽은 오자서가 산 부차에게 복수한 셈이다.

복수는 가깝고 용서는 멀다. 그러나 아무리 뿌리 깊은 미움과 증오도 풍화작용을 겪게 마련인가. 반목의 골이 깊던 삼성과 CJ 형제는 기구한 운명에 맞닥뜨렸다. 맏형인 CJ 이맹희 명예회장은 타국에서 불귀의 객이 돼 육신만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동생인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수년간의 송사, 그보다 더 깊은 병치레 끝에 외롭게 객사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편안하게 영면했다는 것. “동생을 10분, 아니 5분이라도 만나 손잡고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싶다”는 바람은 유언으로 남았을 뿐이다. 아들은 병이 깊어 같은 병원에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입관조차 지켜보지 못하는 처지다.

이건희 회장은 형보다 먼저 깊은 병을 얻어 병실에 누워 있다. 간간이 눈을 껌뻑거린다고 하나 의식이 있는지조차 불확실하다. 형과 동생의 만남은 지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형제가 쏟아내고 뱉어냈던 수많은 증오의 언사들은 허공의 먼지가 되었다. 황금으로 쌓은 바벨탑도 시간과 죽음 앞에서는 한낱 고철더미에 불과하다. 두 형제는 먼 길을 돌고 돌아 원점으로 왔다. 화해는 남겨진 가족들의 몫이 됐다.

어디 개인사뿐이겠는가. 남한과 북한은 뿌리 깊은 반목, 복수, 응징의 역사 한가운데 서 있다. 광복 70년을 맞은 남북관계는 실신상태다. 남북관계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 광복 50주년, 60주년의 야심찼던 통일이벤트는 자취를 감추었다. 오히려 11년 전에 창고에 넣어두었던 스피커의 먼지를 털어 다시 꺼내들었다. 서로를 향해 귀가 찢어져라 볼륨을 높이고 있다. 때아닌 확성기 전쟁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비방 수위가 살벌하지는 않다는 것. 비방이 쌓일수록 남북 간의 거리는 더욱 멀어져만 간다.

중국과 대만이 한 걸음씩 다가가며 새로운 물꼬를 틀 즈음인 1982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 랴오청즈는 장징궈 대만 총통에게 편지를 띄웠다. ‘내 동생 징궈’(두 집안은 아는 사이였으며 랴오청즈가 두 살 위였다)로 시작됐다. “타이완은 언젠가는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다. 골육이 분리된 동포들의 애통함을 동생이 아니면 누가 풀어주겠는가. 통일은 빠를수록 좋다. … 우리는 만나서 한번 웃으면 모든 원한이 풀리는 사이다.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자….” 장징궈는 1987년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자’며 40년간 유지해온 대륙여행금지령을 해제했다.

복수는 두 개의 무덤을 만든다고 한다. 상대방과 나의 무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수의 목청을 돋우는 확성기가 아니라 서로의 육성을 귀담아들을 수 있는 보청기다. 응징, 타격, 섬멸, 박살, 초토화와 같은 ‘피의 단어’가 아닌 화해, 협력, 공존, 평화와 같은 ‘상생의 단어’들이다. 한번 크게 웃고 구원을 털어버리는 것은 요원한 꿈인가. 언제까지 ‘복수는 나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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